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찾았답니다.". 독립운동가 김승태지사의 증손자이신 김융일 선생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행입니다. 조순남 할머니께서 다시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조의 유품을 귀한 사료라고 판단하여 공공기관에 기증을 하고 14년이 지난 후 기증품이 시청에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 후손으로서 선생이 겪은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그래서 그런지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선생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한껏 배어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아는 바와 같이 그간 김해에서는 시민이 기증한 책 한권의 행방을 찾느라 작지않은 소동이 벌어졌었다.

 김해에는 1919년 장유 내덕에 살았던 조순남 여사께서 친필로 지은 가사 한 편이 전해오고 있다. 관습상 내방가사로 분류되는 이 가사는 애초에 '자식소회가'로 알려져 왔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가사로 인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그렇게 알려졌기 때문에 이 가사가 갖는 역사 문화적 의미는 다소 축소되어 알려진 점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식에 대한 평범한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만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랬는지 유족 측에서 김해시에다가 기증을 한 턱이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 그 가사의 존재 가치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필자가 좀 더 세밀하게연구를 해 볼 요량으로 원본 열람을 요청하였다. 사건은 그 이후 벌어진 것이다. 기증한 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연구자에게 원본자료는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부득이 복사본을 자료로 삼아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유족들이 참석을 하게 되었고 기증품의 행방에 대해서 그 분들이 알게 되었다. 찾아보자는 의견이 비등하였다. 2018년의 일이다.
 
 이후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제에서 이 가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가 발표를 하자 언론기관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시장의 보다 더 적극적인 의지하에 이 가사를 찾아내기에 이르른 것이다.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가사를 찾기 위한 관련 공무원들의 노고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바이다. 수많은 자료를 헤집고 뒤져서 살피는 과정의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발견의 기쁨도 매우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고 깊숙한 곳의 서류 봉투에 잠들어 있던 가사는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이들이 애타게 찾아야만 했던 것일까?

 『김승태만세운동가』가 갖는 의미는 대략 두 가지 의미로 정리 된다.
 첫째는 1919년 4월 12일 김해 장유에서 거행되었던 독립만세운동의 전모에 관한 기록으로서 기록문화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기록은 생생한 현장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후일담이나 회고록이 아니라 사건의 시간적 전개과정을 따라 그때그때의 실상과 소회를 마치 일기를 쓰듯이 또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듯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도 독립만세운동이라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가사가 지니는 지역의 문화사적 의미가 크다는 점이다. 주지해오다시피 '내방가사'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가사는 1919년 장유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문학작품이다. '내방가사'라는 장르는 한글로 작성된 여성들의 전용적 장르다. 조순남의 이 내방가사는 1919년 당시의 장유의 한글 표기, 지역의 언어, 문체 그리고 문학적 표현 방식 등과 같은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마을 공동체와 인맥, 교통문화, 의례, 감옥실상, 재판과정, 끌려간 독립운동가들의 외형적 면모 등과 같은 것까지 세세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떠올려 본다. 다소 비약적이긴 하지만 국가의 명운이 달려 있는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장군의 소회를 기록해둔 것이 '난중일기'라면 국가의 운명이 강탈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무명의 어머니가 나라를 구하고자 나선 아들을 보면서 나라를 걱정하고 자식을 걱정하며 그 사실을 알리고자 누구나 알 수 있는 한글로 지은 것이 '내방가사'라는 점은 서로 유사한 구조라는 사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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