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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동 신선이 되고픈 남명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 남명학 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 남명학 박사

 청학동(靑鶴洞)은 지리산 청학동의 유래가 존재해 오던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동쪽 능선 아래 해발 800m 고지인 지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산촌으로 현재는 도인촌으로,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종교취락의 성격을 지닌 오지 마을이다.
 
 지리산 청학동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고려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으로 노인의 구전에 근거한 것이었다. 청학동에는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는 지원 병사들이 청학동에 들어와 거주하였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100가구 정도가 살았다. 이인로는 <파한집>에 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했다.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봉오리와 꽃받침처럼 잘 어우러진 봉우리와 골짜기가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다 대방군(帶方郡)에 이르러서 수 천리에 서리어 맺히었다. 이 산 주위에 10여 고을이 있는데 한 달 이상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이 산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통행할 수 있다. 구부리고 엎드려 몇 리쯤 가면 넓게 트인 동네가 나타나는데 사방이 모두 좋은 농토다. 토질이 비옥하여 곡식을 심기에 알맞다. 푸른 두루미(청학)만이 그 안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청학동이라 이름 하였다. 

 남명이 청학동을 찾아간 것은 두류산(지리산)을 지인들과 여러 날 산행을 하면서 시를 남기면서 더욱 유명한 곳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두류산은 옛날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 두류(頭流)는 백두산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르렀다는 뜻과, 백두산의 맥이 바다에 이르러 그치기 전에 이곳에 잠시 멈추었다 하여 붙여젔다는 여러 설이 있고, 산세가 멀리 넓게 둘러 있다하여 우리말 '둘러' '두리' '두루’를 한자로 음사한 것이라고도 한다. 두류산은 남명이 여러 지인, 제자들과 여러 차례 다녀서 "산행의 전말을 기록하도록 했다"고 하면서 <유두류록 遊頭流錄>을 남겼다. 남명은 여기서 "내 일찍이 두류산을 덕산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 번이고, 용유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번, 장항동으로 들어간 것이 한번, 청학동과 신응동으로 들어간 것이 세 번, 백운동으로 들어간 것이 한번"이라고 하여 모두 11번 산행을 하였다. 남명이 남긴 시 두수를 보면,

 청학동 (靑鶴洞)

 한 마리 학은 구름을 뚫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구슬이 흐르는 한 가닥 시내는 인간 세상으로 흐르네.        
 루(累)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둔 산하는 보지 않았다고 말해야 겠네.             

 청학동폭포를 읊다(詠靑鶴洞瀑布)

 굳센 적이 충진 벼랑이 막아섰기에             
 찛고 두드리며 싸우길 쉬지 않는다.             
 요가 구슬 버리는 것을 싫어하여                
 쉬지 않고 마시고 토하는구나.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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