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칼

나뭇잎 칼 / 양민주 지음 / 산지니 / 200p / 1만 5천 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와 시집 '아버지의 늪'을 냈던 양민주 시인이 또 한 권의 수필집을 냈다.

 이 책에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창녕과, 현재 살고 있는 김해이다. 저자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지도 살고 있지도 않지만 책을 읽는 동안 불쑥 고향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살아오는 동안 저만치 밀쳐두었던 고향의 풍경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가 하면, 현재 살고 있는 곳의 이런저런 일들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림이 있다. 저자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 마음결을 잘 알고 있는 범지 박정식의 그림이다. 책의 제목 글씨와 표지그림, 책 속의 그림까지 모두 또 하나의 작품세계이다. 이전의 '아버지의 구두'에서 보여준 것처럼 양민주와 박정식의 두 세계가 만나 어우러지는 책이다. 글을 읽다가 그림을 보면서 잠시 마음을 쉬고, 그림을 보다가 글을 읽으며 사유를 확장하는 독서가 즐겁다.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에는 글을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저자와 출판사는 책을 묶으면서 글을 실을 차례를 적잖이 고민했겠지만, 꼭 실린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이어지는 소설이 아니니까, 책을 뒤적거리면서 마음 가는 글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저자도 독자들이 그렇게 자유롭고 여유롭게 읽기를 바랄 것이다.

 필자가 아는 저자는 그런 사람이다. 편하게 읽고, 책장도 접고, 밑줄도 주욱 긋는 필자를 보았다면 저자 역시 편한 웃음을 지을 게 분명하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경부터 먼저 찾아 읽었다. 그 글들이 그립고 정겨운 시절의 삶을 되돌려주었다. 그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싶어서 책장을 뒤적거리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살아온 시간이 있다.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현재까지, 소중한 행복과 사랑의 순간들이 있다. 사진으로 포착한 듯, 혹은 한 편의 그림으로 그려진 듯 저자의 마음 속 깊이 각인돼 있던 장면들이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지나온 시간이 소중하지만, 그 시간을 이렇게 다정하고 우아하게 타인에게 들려주기란 쉽지 않다.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수필을 쓰는 양민주가 더 알려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사다리꼴 시렁' '의령과 할아버지' '우물' 등의 소제목은 그 단어만으로 그리운 한 세계를 불러온다. '사다리꼴 시렁'에는 아버지가 집을 짓는 것을 보았던 어린 소년 양민주가 있다.

 "나는 터를 고르고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상량을 올리고 서까래를 다듬고 짚을 잘게 썰어 넣어 진흙을 이겨 벽을 세우고 기와를 올리는 과정을 보면서 자랐다."

 이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저자의 고향집 마당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버지의 집 위에, 양민주의 책이 지어지는 풍경을 본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