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민긍기 교수(창원대학교 명예교수)가 '원시가요와 몇 가지 향가의 생성적 의미에 관한 연구(도서출판 누리·2019년4월22일)'라는 책을 냈다. 우선 제목만 보면 학술연구서 이구나 하는 짐작이 간다. 맞다. 말 그대로 학술 연구서다. 저자 서문에 나와 있다시피 정년을 앞 둔 저자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발표했던 논문을 다시 개고하여 엮어서 정년 후 발표한 책이다. 저자가 그간에 역점을 두고 연구해 온 바를 집약해 놓은 것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순수 학술서이지만 문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의 문화적 활용 가치다.
 
 원시가요는 원시시대의 가요를 말한다. 저자는 구지가(龜旨歌)를 비롯하여 황조가(黃鳥歌)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그리고 서동요(薯童謠) 헌화가(獻花歌) 처용가(處容歌)를 대상으로 하여 그 노래들의 생성의 배경과 배경에 기반 한 제의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원시시대를 신화시대로 규정하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원시가요가 제의적 과정에서 불리어진 노래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구지가(龜旨歌)」를 그 본으로 삼아 각 편의 가요의 생성적 의미를 구명(究明) 하고 있다.
 
 흔히 고대사회를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라고 한다. 이 말은 곧 고대사회가 제의에 의에서 구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생성된 원시가요를 제의적 상관물로 판단하고 있다. 원시가요가 실행되는 현장을 제의적 장소로 지정하고 원시가요를 이 장소에서 제의적 절차에 따라서 불리어 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시가요에는 제의의 기능적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 저서의 일관된 논지이다.
 
 요약하면 저자는 이 책에서 원시가요의 배경설화를 통해서 고대사회의 세계관을 집약하고 있는 제의의 절차를 정리해 두었고 그 절차에 따라 각 가요의 제의적 기능과 의미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위에서 말한 문화적 활용가치에 부합되는 지점이다.

 먼저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원시가요의 배경설화와 가요를 구축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해석이다. 문학은 그것이 구술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언어로 구축된다. 언어는 당대적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다. 저서에 의하면 신화시대에는 신화시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언어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원시가요 연구에 언어적 연구가 필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가요의 언어적 연구는 이미 양주동 선생을 비롯한 선학들이 견지해 왔던 바이기도 하지만 민교수는 그간의 언구자들과는 달리 '제의'로 압축되어 있는 당대의 세계관에 주목하고 그 세계관적 관점에서 가요를 구축하고 있는 언어를 연구 하고 있다. 그 점에서 민교수의 연구는 그간의 연구들에서 진일보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언어적 연구와 관련하여 그간 민교수는 '지명연구(地名硏究)'를 해왔고 그 결과를 책으로 엮어 낸 바 있다. '창원도호부권역 지명 연구'와 '김해의 지명'이 그것이다.
 
 항간에서는 문학연구자가 마치 언어학자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있는 지명(地名)을 연구한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저자의 지명연구는 원시가요와 그 가요적 배경인 신화시대의 언어 연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화적 세계관과 그것을 함축하고 있는 신화적 언어가 오늘날 존재하는 지명(地名)생성의 원형이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이해되고 덕분에 현존하는 지명의 풀리지 않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이 책이 주는 문화사적 가치는 이와 같이 우리 문화의 원형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현존하고 있는 문화의 원형적 실체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통관하고 있는 문화적 원형을 원시가요와 배경설화의 제의적 절차, 그리고 각 화소의 기능 및 이름을 통해 밝혔다는 것은 현존하는 문화의 본질적 의미를 밝힌 것이고 이것이 문화의 출발적 의미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위와 같은 언어적 의미와 더불어 제의적 절차를 ①청배(請陪) ②찬신(讚神) ③축원(祝願) ④공수 ⑤공수의 실행 ⑥축원의 성취 내지는 모의적 성취 ⑦송신(送神) ⑧음복(飮福)으로 나누고 각각의 단계별 의미와 가요와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그 필두에 「구지가(龜旨歌) 연구」가 있고 〈구지가〉의 제의적 구조와 기능이 여타의 가요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만큼 구지가와 그 배경설화의 제의적 실체가 우리 문화사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구지가 연구'를 보면 '구(龜)'가 생물학적 존재 '거북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어 'ㄱㆍㅁ'을 차자표기(借字表記)한 것으로서 창조의 주체인 '신격(神格)'을 뜻하며 수로가 탄생한 '구지(龜旨)'는 '신격이 탄생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구지(龜旨)가 신의 탄생과 더불어 천지가 창조되는 장소'인 '우주의 중심'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왕이 'ㅇㆍㄹ'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ㅇㆍㄹ'이 닭이 낳은 '닭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아는 자 또는 인식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고유어로서 '우주의 질서를 아는 자'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당시는 왕이 신격으로 인식되던 시대이기 때문에 왕의 탄생이 곧 새 국가의 창조 또는 새 시대의 창조를 뜻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에 따라 왕이 '인식한 자'를 뜻하는 'ㅇㆍㄹ'에서 탄생하는 것으로 표현 한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 된다.
 
 민교수는 신화시대를 지금의 역사시대와는 달리 신 중심의 시대로서 신적 질서와 관련된 것만이 최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시대이며, 인간 스스로가 신적 질서와 동격일 때 가장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던 시대로 정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라는 존재도 신과 동격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건국신화의 왕의 탄생은 곧 신의 탄생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구지가'의 배경 설화인 '가락국기'의 '수로왕신화'는 '중심산'인 구지봉에서 아홉구간들에 의해 거행된 계(?)라는 이름의 입사제의(入社祭儀)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 입사의례를 통해서 왕이 탄생하고 나라가 건국되는 제의적 과정에 관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가락국기'는 국가를 건국하고자 하는 자들이 수로왕을 탄생시키고 금관가야를 건국하는 과정을 위의 제의적 절차에 따라 기술한 것이라는 것이다. '구지가'는 이 제의적 과정 중에 불리워진 '축원(祝願)'에 해당하는 노래로서 모름지기 봉우리의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기를 '龜何 龜何 首其現也 燔灼而喫也'는 제의를 주관하는 주체들이 '우리가 나라를 세울 대왕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왕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축원을 하고 공수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제의적 의미를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혁거세왕신화〉 및 〈단군신화〉,〈주몽신화〉와 신화를 구성하고 있는 화소적 기능들을 상호 대비하하여 동질의 의미 또는 차이 등을 밝히고 있다. 실로 〈수로왕신화〉의 해부를 통해서 본질적 의미를 구명(究明)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문화의 원형적 의미를 밝히고 있는 이 책을 학술연구서로 규정하여 서고(書庫)에만 모셔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 복원의 밑거름으로 써야 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거듭하지만 이 책의 「구지가 연구」는 가야건국의 제의적 실상과 절차 그리고 그 의미를 낱낱이 밝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삼국유사(三國遺事)》〈가락국기(駕洛國記)〉가 《가락국(駕洛國)》의 탄생의례에 관한 기술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그간에 많은 학자들이 〈首露王神話〉를 언급해 왔지만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루어 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당대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여 신화를 구축하고 있는 언어와 의례적 기능과 의미까지를 총 망라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의례의 실제에 관한 연구와 그 실제를 바탕으로 한 제의적 복원에 있다. 다행히 지금 가야사 복원이 국정과제로 선정되어 시행에 이르고 있다. 복원은 주로 유물이나 유적지 복원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인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짚어 봐야 할 것은 가야라고 하는 시대를 떠받들고 있는 세계관이라고 하는 무형의 실체와 그 실체의 형상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곧 가야의 건국의 이념적 실체와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교수의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해석에 그 해답이 있다. 아울러 실제적 모습은 지역의 무형문화재적 형태로 잔존해 오고 있다. 제대로 된 해석과 실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로왕 탄생의례’는 복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가야의 시작은 가야의 건국에서 시작된다. 수로왕신화의 의례적 복원은 곧 가야사 복원의 시작을 의미 한다. 실제대로 복원하여 무형문화재로 관리하여야 한다고 본다.
 
 민긍기 교수의 '원시가요와 몇 가지 향가의 생성적 의미에 관한 연구'의 '구지가 연구'는 의례적 복원에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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