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기묘년 4월 초닷새
-거북아 거북아

가야연맹 회의 때 보여준 금관가야 자충패의 연극은 각 연맹국의 대표의 초청을 받고 궁중에서 공연했고 돌아올 때 많은 상을 받고 왔다. 아! 자충패의 가무백희는 언제 보아도 재미있다.
요즘에는 가야금 보급이 조금씩 되어가고 연주 솜씨가 좋은 사람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섬섬이와 해선 아씨의 연주는 가야에서 가장 이름나 있었다. 섬섬이와 해선이의 가야금 연주 연습은 망해정 뒤편에서 밤낮없이 이루어져 신들린 사람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정에서도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기 위해 군신이 함께 제천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차게 노래를 합창한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거북아 거북아 춤을 추어라
춤추지 않으면 밟아 버리리
거북아 거북아 빙빙 돌아라
돌지 않으면 바위에 던지리
거북아 거북아 고개를 들어라
들지 않으면 목을 베리라
거북아 거북아 하늘을 보아라
보지 않으면 눈멀게 하리라

노래에 맞춘 군무는 사람들을 신들린 듯하게 하였고 나도 그런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기묘년
-합환의 결정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시었다. 황세란 젊은 장수와 곧 약혼식을 치르고 9월 초에 합환례를 올리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황세는 북대사동에 사는 황 정승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집안이 기울어져 가난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지내다 군대에 동원되어 여러 번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군대에서 계급이 차츰 올라 상장군에 임명되어 있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그의 전부이다. 그간 아바마마께서는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함께 국제관계를 새롭게 하여 국태민안을 도모하려 하시었다. 그러나 그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고구려는 자체내분으로 힘을 쓰지 못하고 조용하지만 조정의 신하들도 친 신라파와 사력이 강한 백제의 영향력이 있었고 신라 여인이 가야로 시집와서 태어난 후손들은 다분히 신라를 외갓집 나라로 여겨 친근감을 갖게 되는 분위기였다. 신라와 가까워지면 백제를 자극하게 되고 백제와 가까워지면 신라를 자극하게 되어 여러 가지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숙고 끝에 3국과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체 금관가야의 군비를 증강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군사의 사기를 북돋우고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 황세 장군을 부마로 맞이하는 것을 만조백관들이 찬성하여 결정지은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대의 공주는 기전지 공주시다. 그는 할아마마 취희왕의 여동생으로 왕비 인덕왕후와의 각별히 가까운 사이였다. 서로가 친했지만 예의는 잃지 않았다. 그 당시도 신라와 분쟁으로 신라는 왜장 샤시하기에게 미녀작전을 써서 우리 가야 제국을 쳐들어와 왕과 왕자들을 백제로 피난 가게 한 적이 있었다.

 이때 공주는 직접 왜국으로 건너가 왜왕을 만나 왜왕에게 가야의 혈연관계를 상기시키고 많은 가야인이 이주해 살면서 농업생산과 문화를 높이고 있는 점을 들어 협조를 구한 적이 있다. 왜왕은 장수 모꾸라 긴세를 보내어 가야를 구한 적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어딘들 못 가리. 천지신명이시여. 가야 종묘사직을 돌보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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