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 오노 히로유키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352p / 1만 6천 800원

 1889년 4월 16일, 런던 빈민가에서 찰스 스펜서 채플린이 태어났다. 그리고 나흘 뒤에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났다.
 채플린은 5살 때 어머니 대신 뮤직홀 무대에 섰다. 그때부터 무대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은 채플린은 18살 때 당시 영국 뮤직홀 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카노 극단과 계약을 맺고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다.

 싸움을 좋아하던 골목대장 히틀러는 화가를 꿈꿨다. '그림에 자신있다'고 늘 자신만만했지만 18살에 응시한 빈 조형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2년 연속 낙방한다. 히틀러는 빈에 머물면서, 얼마 안되는 유산과 고아 연금으로 살았다. 낮에는 데생을 그리고, 밤에는 오페라를 즐기며 무위도식했다. 

 채플린과 히틀러는 둘 다 예술가를 꿈꿨고, 쇼펜하우어의 애독자였으며, 똑같은 콧수염을 길렀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20세기의 빛과 그림자로 비유한다. 두 사람에 대한 세계인의 감정은 극과 극이다. 두 사람은 20세기에 가장 사랑받은 남자와 가장 미움받은 남자였다.

 저자 오노 히로유키는 채플린 연구가로 유명한 일본의 극작가이다. 20세기 중반, 무서운 속도로 유럽을 정복해나가던 나치 독일의 히틀러, 그리고 영화와 웃음이라는 방패를 들고 저항한 미디어의 제왕 찰리 채플린의 대결을 추적해 이 책을 썼다.

 두 사람이 태어난 지 반세기가 지났을 때였다. 1940년 6월 23일 아침, 아돌프 히틀러는 파리에 도착했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했다는 뉴스에 전 세계가 경악했고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 누구도 히틀러의 기세를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채플린은 반격을 개시한다. 할리우드의 촬영장에서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신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독재자를 비판하는 명연설을 영화의 장면으로 넣었다. 채플린은 히틀러가 몰고 온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세상에 웃음이 절실한 때는 없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웃음은 광기에 대항하는 방패입니다.”

 히틀러는 정치에 입문한 초기부터 미디어의 힘에 주목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독자적인 집회와 선전 방식을 고안하고, 미디어를 잘 활용했다. 히틀러는 독일 전국의 모든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에 반드시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상영하도록 명령했다. 채플린은 바로 그 미디어로 히틀러에 맞섰다. 채플린의 무기는 영화였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콧수염을 기르고 장교 군복을 입고 있는 채플린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히틀러를 연상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독재자를 비판하는 장면은 정말 명장면, 명연설이다. <위대한 독재자> 상영 이후에 히틀러는 대중연설 횟수를 줄였고, 채플린의 영화 상영을 탄압했다. 히틀러가 온갖 방법으로 탄압했지만, 채플린의 인기는 더 높아져갔다.

 히틀러에게는 미디어가 또 하나의 중요한 전쟁터였고, 그 전쟁에서 채플린은 승리했다. 무기와 독재 앞에서 웃음과 영화로 맞섰던 채플린은 진정한 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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