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 남명학 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 남명학 박사

  온 산하가 녹음방초로 가득하다. 비온 뒤 길가의 풀이 한자나 자라서 제초기 소리가 요란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농촌에서는 설익은 보리밭을 보고 언제 타작하여 보리밥이라도 배부르게 먹을가 하고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이 생각난다. 우리가 어릴 적에 '보릿고개'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 고개를 넘기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는 기다림에 애를 태운 기억이 난다. 지금은 보리밥을 향수처럼 찾아 별미로 맛보는 정도지만 어릴 적 하도 많이 먹어 질려서 보기도 싫다는 사람도 있다.

 남명이 김해생활에서 겪은 농촌은 그가 지은 시 〈분성(김해 옛이름)에서 보리타작하는 소리를 듣고, 在盆城聞打麥聲〉에서 절박한 농민의 심사가 한 고비를 넘기는 듯하여 지은 시라고 본다. 어릴 적 필자도 보리타작을 한 적이 있어서 정겹게 느껴지는 시다. 

 在盆城聞打麥聲(김해성에서 보리타작하는 소리를 듣고)

 한낮이 지나자 햇볕도 취한 듯 짙은데               過午陽和醉似濃
 수많은 버들가지에 바람이 한번 지나가네            萬條楊柳一邊風
 숨어사는 사람도 전양자를 읽을 줄 알기에           幽人解讀全陽子
 그래도 공중에서 보리타작하는 소리를 듣는다네      打麥猶聞聲在空

 1연에서
 오뉴월 무더위가 한창일 때 보리가 누렇게 익는 광경을 화화적으로 표현.

 2연에서
 등줄기에 구술같은 땀방울이 삼베적삼을 적시지만 간간히 부는 바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
 
 3연에서
 전양자(全陽子)는 宋나라 유염(兪琰)의 호인데, 여기서는 그의 저술을 말한다. 송나라가 망한 뒤 은거하여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易學, 道家說에 능통하였다. 저서로 周易集說, 讀易擧要, 周易參同發揮釋疑 등이 있다.
 
 4연에서
 도리깨를 공중에 휙 돌려 보리를 타작하는 모습을 말한다. 남명은 평소 주경야독을 하면서 농한기에는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농촌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와 같은 시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당시 민초들의 아픔은 뒤로한 채 정치인들의 동향을 두고 지은 시가 있어 눈길이 간다.

 그져 지은 시를 보면 아무렇게나 지은 시가 아닌 듯하다. 세상인심이 고약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아서 씁쓰레하다.

 
 그져 지은 시


 취했다 버렸다 하는 세상인심 나무랄 것도 못되지만
 구름마저 대단하게 아첨할 줄 어찌 알았으랴.
 먼저는 갠 날을 틈타 다투어 남쪽으로 내려 왔다가
 날이 흐리면 다투어 얼른 북쪽으로 내 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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