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56p / 1만 6천 원

  △"파시스트 독재자께서 어느 날 언론사 취재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모두 모였다. 무솔리니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까치발로 무솔리니의 등 뒤로 걸어가 그가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 뭔지 확인해봤다. 위아래가 뒤집힌 영불(英佛) 사전이었다."
 
 헤밍웨이가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무솔리니를 취재했을 때의 기사이다. '토론토 데일리 스타' 신문, 1923년 1월 27일에 실렸다. 뒤집힌 책을 읽는, 아니 기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던 무솔리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쓴 짧은 기사인데, 그 안에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을 남긴 작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는 기자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18세 새내기 기자였던 헤밍웨이는 '캔자스 시티 스타'라는 신문에 처음으로 사회면 기사를 썼고, 30대 후반에 북미신문연합 통신원 신분으로 스페인내전 현장에서 기사를 썼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적십자 운전병으로 6개월 동안 참전했고 전장터에서 총상을 입으면서 글을 썼다. 그리스-터키 전쟁 당시에는 30㎞에 이르는 피난민 행렬을 보도했다. 2차 세계대전 현장에도 기자로 있었다. 헤밍웨이가 작성한 기사와 칼럼은 약 25년에 걸쳐 400여 편에 이른다.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본 그 경험들이 그의 작품을 쓰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기사와 논픽션 기고문을 모아서 소개한다.

 훗날 작가로 성공한 헤밍웨이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어봤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답했다. "아는 것만 써야 한다." 간단명료한 말이지만, 강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꼭 지켜야 할 기본일 것이다. 기사든, 소설이든 좋은 글을 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헤밍웨이는 소설을 쓰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경험이 많을 수록 더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사실에 가까운 문장부터 써야 한다는 헤밍웨이의 소설 작법은 기사와 소설의 지향점이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20대 헤밍웨이가 쓴 '용기의 값은 얼마인가' 라는 기사는 무척 인상적이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쟁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군인들이 고향으로 귀향했으나, 전쟁은 모두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 헤밍웨이는 귀향한 군인들이 전당포에 무공훈장을 줄지어 맡기고 급전을 당겨쓰던 세태를 취재했다. 전쟁 중에 훈장은 남발됐고, 목숨과 바꾼 그 훈장은 엄정한 삶의 현실 앞에서 별 가치가 없었다. 무공훈장은 중고 정강이 보호대보다도, 고장 난 알람시계보다도 못했다. 헤밍웨이의 이 기사는 전쟁이 끝난 후의 실상, 세태를 짐작하게 한다.

 문학 작품으로만 만났던 헤밍웨이의 기사를 읽는 것은 특별한 감흥을 준다. 저널리스트로서 작성한 글에서는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헤밍웨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자였던 헤밍웨이는 기사로, 소설가였던 헤밍웨이는 소설로,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을 고발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