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고대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말씀을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그 존엄성을 훼손하는 불경스러운 짓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당시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하지 않고 함께 합송으로 결집하였습니다. 스리랑카 연대기에 따르면 실제로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236(기원전 250)년 경의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임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경전의 첫머리에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말머리를 꺼낸 뒤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를 전하는 것이 정형화된 것입니다. 유교경전의 '공자님 가라사대'인 '자왈(子曰)'에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경의 원본은 팔리어로는 evam me suttam, 산스크리트어로는 evam may? ?rutam으로써, 직역하면 "이와 같이 나에게 들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속에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의지로 들은 것이 아니라, 붓다가 말한 내용을 나에게 들려진 그대로 전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시아문'은 붓다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불교를 앞세우는 한국의 거대 종단 대부분의 스님들은 '여시아문'이란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라는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는 여시(如是)의 시(是)를 강조하며 무엇이 같다는 말이냐를 해석하면서 온갖 이론들을 갖다 붙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거울과 같다를 의미한다면서 정혜, 무관심과 평상심, 진공묘유, 체와 용 등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아문(我聞) 역시 따로 떼어내어 무아가 나오고 진아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상견과 단견을 부연설명 하면서 온갖 선불교 중심의 중국불교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45년간 넓은 인도지역을 유행하면서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지만 실제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성문제자라고 할지라도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수행의 나침반으로 삼았던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직접 듣지 못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음 그대로 생생하고 명확하게 전해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초기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비구들을 꾸짖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이는 가르침을 바로 듣고, 바르게 이해하여야 함이 수행을 위한 유일한 방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처님 곁에서 25년간 시봉을 하며 부처님을 모셨던 아난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난다가 부처님을 시봉하는 조건으로 내세운 것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듣지 못한 설법은 부처님이 다시 자기에게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해 듣는 말은 항상 본뜻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각 부파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는 교리를 내세우고 있고, 심지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상까지도 난무하던 때에는 더욱 부처님 가르침의 원음이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시아문'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이 분명하다'라는 시그널을 주기 위한 일종의 관행구였던 것입니다. 고대 인도에서 문(聞)의 의미는 단순히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배워서 익히 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시아문'의 온전한 뜻은 '내가 배운 대로 익히고(聞), 이를 정확하게 헤아리고(思), 열심히 수행한(修) 결과가 부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일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준이 맞다'라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일, 갖고 있었던 어떤 선입견 등 여러 가지의 생각의 틀이나 경향, 생각의 습관이나 관성에 의해서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불가에서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그 업이 내 속에서 내재되어 있다가 바깥의 조건에 따라 인연을 이루어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으로 인해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의해서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유식의 용어로는 '변계소집성'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모든 것을 집적하는 바에 따라서 변계, 즉 두루 헤아리고 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나의 기준을 버리기 위해 업을 다스리고, 동시에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맹세하는 헌사의 의미로 '여시아문'을 다루어야 합니다.

 '여시아문'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아닙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 또한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여시아문'이란 부처님에게 '깨달은 이는 행으로 드러내며 그 행함을 가르침의 사회적 베풂, 다시 말해 중생에 대한 회향으로 증명하겠습니다'라고 드리는 약속인 것입니다. 다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부처님의 수준만큼 나의 기준을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 앞서 여실지견이 선행되어야 함을 천명하는 것이 '여시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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