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다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 / 김광한 지음 / 북레시피 / 352p / 1만 6천 원


 

 요즘은 음악을 다양한 매체, 기계로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편하게 어디서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한 세대 전만 해도, 라디오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매체였다. 음반을 사지 않아도, 녹음기나 전축이 없어도 라디오만 있으면 음악이 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요즘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 시절, 마치 내 심정을 모두 알아주는 듯한 노래와 팝송을 소개하는 DJ의 한마디에 울고 웃었던 시대가 있었다. 예쁜 글씨로 사연을 쓰고 알록달록 꾸민 신청곡 엽서를 보내기도 했다. 혹시 라디오에서 자신의 사연을 들려줄까 마음 졸이며 라디오를 들었던 사람들, 스마트폰 대신 라디오를 끼고 자란 중장년층이라면 이 사람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80~90년대를 주름 잡았던 팝송 전문 DJ 겸 팝 칼럼니스트 김광한.

 이 책은 김광한의 유고 자서전이다. 김광한은 2015년 7월 6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한지 3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상심이 커서 김광한의 사무실을 바로 정리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사무실에서 귀한 기록이 나왔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LP판 더미와 늘 공부하듯 보느라 사무실에 가득했던 팝송 관련 책들 사이에 원고 뭉치가 있었다.

 김광한이 직접 써 내려 간 삶의 궤적이 그 원고 속에 모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일평생 꿈꾸던 DJ가 되기까지 걸어왔던 길, 굴곡 많은 이야기와 열정 가득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원고뭉치였다. 부인은 원고를 정리해 이렇게 책으로 냈다.
 자서전 형태인 책에는 고인의 어린 시절부터 1993년 4월까지 이야기와 미공개 희귀 사진들이 수록됐다. 팝송을 좋아해 DJ를 꿈꿨지만 생활고에 병아리 장사 등 열여섯 가지 직업을 전전한 사연 등은 생생하고도 흥미롭다. 김광한은 가정교사, 간판장이, 신문배달원, 병아리장사까지 먹고 살기 위해 다양한 업종에서 일했다. 입담은 타고난 것이었는지, 사람들을 설득하는 수완이 좋아서 매번 업으로 나서도 될 만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궤도를 바로 잡았다. DJ라는 목표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단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었다.

 시대상에 얽힌 방송 뒷이야기도 실려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방송에서 한 마디 하기가 조심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위험했을 것이다. 김광한은 그때 킹 크림슨의 'Epitaph' 같은 발라드를 틀며 최대한 조용히 방송을 끌어갔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언론통폐합 때 저속하다는 이유로 팝 DJ들이 무더기로 퇴출된 데 대한 소회도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은 지난 시절의 음악과 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를 넘어서는 문화의 향기를 함께 전해준다. 유명 DJ 이전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80년대 이후와 음악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좀 적은 데, 아마 원고를 끝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버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광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을, 그를 기억하는 분들께 권한다. 책으로 듣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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