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천재들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연 옮김 / 어크로스 / 240p / 
1만 3천 800원

 자신에게 미루는 습관 따위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매번 정해진 시간에 '그것'을 완성해서 넘겨주어야 하겠지만, 그 직전까지는 최대한 미루는 것,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미루기라면 자신 있다. 적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대놓고 '미루기의 천재들'이라니. 천재들도 미루는 습관이 있다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이야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조금은 안심도 된다.

 이 책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앤드루 산텔라는 자신을 '악독한 미루기 전문가'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자신의 오랜 미루기 습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기로 하고 많은 조사와 연구 끝에 이 책을 냈다. 미루기의 심연 속에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성취를 탄생시킨 천재들의 이야기는 미루기가 가진 아이러니한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 미술, 건축,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들이자 미루기의 달인이었던 거장들의 자취가 흥미롭다.

 화가이면서 빼어난 과학자였고, 뛰어난 군사기술자였으며, 한 사람이 남긴 업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류 문화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여럿 남겼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루기의 대가'였다. 여러 일화들 중에 하나이다. 다빈치는 밀라노의 무염수태 성도회에서 '암굴의 성모'를 의뢰했을 때 7개월 만에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성도회 제단에 그림이 걸린 것은 25년 만이었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우리는 르네상스를 이끈 다빈치의 작품을 보며 감탄하기 바쁘지만 당시 다빈치에게 그림을 의뢰했던 사람들이 궁금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과연 약속한 날에 일을 마칠 것인가"였다. 교황 레오 10세는 다빈치를 가리켜 "이 사람은 그 무엇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생전에 완성한 그림이 20점이었던 다빈치는 임종 직전에 "아무것도 끝내지 못했어"라고 탄식했다.

 저자는 이런 문장으로 다빈치의 미루기를 설명한다. "다빈치는 여유가 있을 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나서는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다빈치는 더 완벽하게 하고 싶어서 자신의 속도로 가지 않았을까. 저자는 일을 제쳐놓고 오랫동안 미루는 동안에도 우리의 뇌와 정신이 그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게으른 게 아니라 창의적으로 바쁘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주택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의뢰받은 주택 설계를 아홉 달이나 미루다가 고객이 오기 직전 두 시간 만에 설계를 완성한 일화로 유명하다. 미루고 있었던 아홉 달 동안 그의 뇌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고, 두 시간 만에 설계도를 그렸을 것이다.

 세상은 빨리빨리, 미리미리를 외친다. 미루기를 말하는 이 책은 효율성만 외치는 세상을 향해 질문한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빨리, 미리 해야 하는가 하고. 미루기와 게으름은 다르다.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이 미루기를 하는지, 게으른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천재는 아닐테니, 어쩌면 게으른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쫓기는 시간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걸어갔던 천재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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