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달포 전 부산의 국민행복추진본부에서 김형석 교수님을 모시고 '행복한 삶'에 대한 포럼을 한 적이 있다. 김형석 교수님은 올해 101세의 노 철학자로 아직까지 왕성한 강연과 집필로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말씀으로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70년대 초 대학재학시절 강의를 들은 제자로서 40여 년 만에 보니 가슴이 설레였다. 당대 대 지성인으로 안병욱 교수님과 함께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 이날 주제 강연의 요점은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거나 실천을 꺼리는 평범한 말씀을 예전처럼  역설하였다. 이날 이후 '행복'에 대하여 느낀 소견을 간략히 적어본다.

 모든 사람이 불행해지는 원인을 보면 소유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소유를 위해 사는 사람은 결국 빈손으로 가는데 그걸 못 버리는 것이다. 소유가 목적이고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면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젊을 때는 일을 해야 하고 노년에는 자신의 여생을 몰두할 취미 등으로 여가선용을 즐겨야 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필수적인 노력의 댓가다. 시장경제에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바라는 것은 정당한 권리이자 행복의 기초가 된다.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나의 심신이 허약하면 국가 사회에 짐이 되고 불행을 주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행복을 놓치면 안된다. 국민 의식구조 통계에 의하면 먹을 것이 있어서 생활이 안정되면 일을 하여 행복을 찾는다는 사람이 절대 다수다. 다행히 우리는 일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그런 연유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간 내에 국민소득이 높아져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국민 모두가 생활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기초생활 대상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는 현실정에서 국민 모두가 행복을 못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빈부의 격차와 정신문화와 상관관계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누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필자는 정치에 있다고 본다. 정치인의 의식이 국민행복의 눈높이서 이탈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권력은 소유가 아닌 봉사다. 최근 고위공직자로 발탁되어 청문회를 열면서 세상이 시끄럽다. 고위직 임명을 받으면 기쁜 모습을 보이며 웃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직책을 맡게 되면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결코 웃을 수만은 없다.

 국가나 사회가 나에게 주는 특권은 다시 국가 사회에 돌려 주어야한다. 물질문화만 고급으로 간주하다보니 많은 소유가 행복이라고 하여 재벌 경제인의 가족 모두가 몰락하고 있는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경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한국인의 단점은 나와 남을 다르게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남의 허물은 질서 없이 퍼부으면서 자신의 허물은 감추어 초연시하는 경향을 경계하지 않는 한 소유의 개념은 무너진다. 중국을 보라 문화대국이기에 경제대국으로 강대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공자사상을 경제논리에 적용하자고 하면서 문화혁명 이후 중국문화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몇 년 전 중국 여행에서 호텔 에 비치한 잡지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시진핑이 유교를 강조하면서 논어를 읽어보자는 칼럼을 보고 "앞으로 중국을 따라 갈 국가는 없겠다"고 감탄하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오늘의 중국의 발전 연 6% 이상의 경제성장을 올리고 있다. 그것은 시진핑 주석의 지혜가 전통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선진국 사람이 한국을 보면 5천 년의 역사 속에서 문화의 잠재력이 대단한 나라인데 문화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하지 않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신문을 안보는 나라. 세계에서 똑같은 현상을 놓고 나와 남을 다른 잣대로 보는 나라. 국민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행복은 소유가 아닌 감상하는 것이다. 한번의 소유로 만족감이 끝나지 않는 자 소유에 방점을 찍으면 항상 결핍을 느낀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는 수양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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