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선비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선비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때는 바야흐로 봄날이다. 가끔 꽃샘 추위라고 하여 바람을 안고 비를 뿌리니 꽃잎은 어느덧 하염없이 떨어지고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세월의 무심함을 보여준다. 매화지자 벚꽃 피고 벚꽃지자 철쭉꽃이 온 산천을 물들이니 이강산 낙화유수로다. 지난 주 문학인들 하고 부안 내소사에 갔더니 벚꽃이 한창이다. 가만히 보니 고목이다. 나무는 오래 될 수록 사랑받아서 보호수가 되어 길손의 휴식처가 된다. 신석정 시인 문하관에 가보니 '志在高山流水'라는 글귀가 보인다 생전에 신석정 신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 준 글귀 자신의 좌우명 같은 글귀 웬지 공감이 간다. '나의 마음은 높은 산 흐르는 물에 있다' 는 의미 우리네 인생 그대로이다. 남명이 봄날 즉흥적으로 읊은 시 '春日卽事'가 있다 '思'를 '事'로 적은 것 아닌가 싶은데 둘다 맞는 말이라고 본다.

 붉고 희고 밝은 것이 모두 봄철의 일이라         朱朱白白皆春事
 만물 빛이 때를 만나 들녘에 새롭구나            物色郊原得意新
 본래 봄의 신은 꽃과 기약 있는 듯한데           自是東皇花有契
 소나무 너에게는 어찌하여 은택 없는고           髥君於汝豈無思

 아주 의미심장한 시다. 남명이 25세 인생의 대전환을 겪으면서 과거 공부를 폐하긴 하였으나 민중과 조정을 한시도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명종연간 조정은 혼탁하고 간신배들이 조정에 득실하여 어린 명종의 성총을 흐리게 하고 모후인 문정왕후가 대리첨정하면서 외척의 득세가 도를 넘었다. 이러한 시절 봄이 되어 온갖 꽃이 강산을 물들이고는 있지만 세상은 봄기운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현실을 암시하면서 자신에게는 고작 참봉 벼슬이라는 말단 관직으로 선비를 우대한다는 생색내기의 처사에 한탄하면서 자신에게는 봄은 그저 봄일 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시를 읽고 감히 次韻을 지어 본다.

 春日閑事

 온갖 꽃이 봄을 자랑하며 강산을 장식하는데
 꽃잎 따라 나서보니 봄바람이 방해를 하네,
 본래 봄은 이런 것이 아닐 진데
 어이하여 세상은 시절과 따로 노니는가.

 세상 따라 봄은 다르게 흐트러지지만
 다시 오지 않는 금년 봄 다시 기약 못하는 인생,
 高山流水가 나의 뜻이라는 신석정 님
 내년 봄에는 꽃잎 지더라도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네.

 도화 뜬 맑은 계곡에 봄이 온줄 알았는데
 갈곳 잃은 개구리가 뛰어들어 흘탕물이 되니,
 바로 여름날 소나기 맞은 꼴이로세.
 내년 봄에는 꽃샘 없는 시절이 되기를 빌어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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