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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된 가복 청년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가야 어느 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가복이었는데 착하고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누워 계신 지도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약혼한 아랫마을 처녀 감선이와 결혼도 미루었다. 그 당시 가야가 지금의 창녕 부근 신라의 마두성을 공격하여 뺏었으나 신라의 길원이 재탈환하여 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었다.

 가복 청년은 감선이와 같이 어머니를 위해 백방으로 병구완을 하였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좋은 약초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첩첩산중에 들어가 약초를 구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청년은 감선이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그 길로 가야 서북쪽 지리산 산중으로 들어갔다. 몇날 몇일이 지났으나 약초는 보이지 않았고 길도 잃고 말았다. 목마르고 배도 고파 숲속의 복숭아 등 열매를 따 먹고 옹달샘 물을 마시고 쉬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사냥꾼의 화살을 맞고 다리를 쩔뚝이며 간신히 걷는 노루가 있어 섶에 숨겨주었다. 사냥꾼이 찾았으나 보지 못했다고 하며 노루를 살려주었다.

 한참 후 그 노루의 짝인 듯한 또 다른 한 마리가 따라오라는 듯 힐끗힐끗 쳐다보며 앞장서는 게 아닌가. 청년은 노루를 따라갔다.
얼마나 갔는지 다리가 매우 아파왔다. 그래도 참고 갔는데 드디어 어느 마을에 당도했다.
온 마을엔 꽃과 향기가 가득하고 새소리가 아름다웠다. 그곳 사람들은 예쁜 아가씨들과 함께 청년을 환대하며 좋은 음식과 노래와 춤으로 대접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고마움과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세월이 흐른지 모른다. 이곳에 온 이후는 전혀 세상살이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곳 사람들이 즐겨하는 대금을 불면서 꿈같은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 생각도 감선이 생각도 까맣게 잊었음은 물론이다. 청년은 그곳에서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고 대금과 더불어 편하고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와 감선이 생각이 다시금 머리에 가득해졌다. 드디어 그 노루가 또 나타나 자기를 인도하는 게 아닌가. 따라나섰는데 몇날 며칠을 걸어서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고향 사람은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어머니도 감선이도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때는 거질미 왕이 승하하고 이시품 왕이 즉위한 때였으니 무려 7대가 흘러 2백 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원래 살던 세상으로 돌아왔으나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가복 청년은 너무나 쓸쓸하고 무료했다. 대금을 불면서 자신을 위로하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년이 대금을 불 때마다 짐승들이 함께 즐거워하며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듣고 오는지 노루 다람쥐 등 짐승들과 새들이 날아와 춤을 추며 즐거워했다. 식물들도 생기를 찾는 듯 하였고 사람들도 몰려나와 함께 춤을 추며 노래했다. 온 동네가 즐거운 기운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청년의 가슴 한가운데는 늘 애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자신을 기다리다 늙어 버린 감선이를 생각하면서 미안함과 후회스러움에 가슴이 저미는 것이었다. 흘러간 세월은 어쩔 수 없음을 어이하랴. 늘 마음속으로 ‘감선아 미안해’ 되뇌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그 이후 가복 청년은 홀연히 마을을 떠나 안개 낀 계곡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가야 사람들은 청년이 깊은 산중에서 죽었을 거라고 하는 이도 있고 대금 부는 신선이 되었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훗날 가야 사람들은 신선 얘기를 할 적마다 이 이야기를 즐겨하였다.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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