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68p / 1만 5천 원

 

 때로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 온 가족이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머리를 맞대고 먹었던 음식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김해에 있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이 "논고동찜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 중에서도 논고동찜이 가장 그리웠던 것이다. 타향이라고 말하기에도 벅찬 대도시 서울에서는 그 음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논고동찜은 배고픈 허기 뿐 아니라 정신의 허기까지도 채워주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슬기탕' '다슬기찜'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그리운 이름은 논고동찜이다.

 음식을 주제로 한 방송이 넘쳐나고, 책도 넘쳐난다. '먹방'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우리 주변에는 음식 이야기가 넘쳐난다. 하지만, 가장 그리운 음식은 늘 우리들 삶의 한 장면 속에 있는 것이다.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음식은 삶 그 자체이다.

 이 책은 경북 안동의 의성 김씨 종가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어릴 적 접했던 음식을 떠올리며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어린 시절 작가는 어머니의 살림살이와 음식을 세밀하게 관찰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을 글에서 또렷하게 살려냈다. 구수한 우리말로 그 시절의 풍속과 음식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적확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책은 음식 에세이이면서, 잊혀져가는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낸 일종의 풍물지이고, 삶의 지혜가 비치는 인생론이기도 한다.
 
 또 하나의 매력은 김서령 작가의 문장이다. 작가가 암 투병으로 병상에 있을 때,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조각글"이 흩어져 사라져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동안 김서령 작가가 잡지와 신문 등에 음식과 관련해 썼던 글을 모아서 편집이 시작됐는데, 안타깝게도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음식 이야기에는 사람과 추억이 함께 한다. 작가는 제목에서도 쓴 '배추적'을 '슬쩍 서러운 고향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달고, 살짝 고소하고, 은은하게 매콤한 겨울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들기름에 구워낸 '배추적'에는 작가의 고향이 함께 한다. 밤마실 온 마을 처녀들과 아지매, 할매들이 겨울 밤 입이 궁금할 때 한 두레 구워 먹던 배추적은 지금은 낯선 음식이다. 배추를 이렇게 먹는 방식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겨울 밤 헛헛한 속을 달래주던 배추적을 이제 어디에서 맛볼 수 있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대목에서는 필자도 허기가 졌다. 배추적이 먹고 싶었다. 

 김서령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문장을 아끼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이 가고 한 문장이 지다." 김서령 작가의 글에는 꾸며낸 미사여구가 없다. 그래도 생기발랄하다. 무심하고 담담한 문장이나, 그 안에는 따듯한 온기가 있다. 오죽하면 작가의 글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서령체'라는 말까지 쓰면서 그 문장을 아꼈을까. 필자 역시 '서령체'를 사랑한다.  
 
 김서령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영롱한 '인생 레시피'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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