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수로왕 말년 지리산 기슭 두메산골에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한 청년이 있었다. 가난한 그는 산에서 밤이나 도토리를 줍고 지내면서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살았다.
그는 이 산골에만 살아서는 평생 고생만 하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이 많이 사는 큰 고을로 가기를 원했다. 어머니 혼자서 지낼 양식을 준비해 놓고 저 해안선에 자리 잡은 가야 수로 김해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더 좋게 모시기 위해 떠난다는 하직 인사를 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몇날 며칠을 걸었다. 해거름에 어느 산 귀퉁이를 돌아가는데 큰 두꺼비가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그냥 보고 지나왔다. 아랫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어느 집 처마 밑에서 간신히 잠을 자게 되었다. 그 청년의 꿈에 아까 그 두꺼비가 나타났다.
 "도령님 저의 남편을 살려주세요. 도령님이 저를 보신 그 자리 조그만 굴속 땅 밑에서 겨우살이를 끝내고 제가 먼저 밖으로 나오고 남편이 뒤따라나오는데 큰 바위가 굴러 굴이 막히게 되었어요. 도령님께서 저의 남편을 살려 주세요" 하며 눈물을 지었다. 청년은 두꺼비를 본 그곳으로 되돌아가서 살펴보았는데 역시 큰 바위가 굴을 막고 있었다. 도령은 혼자서 바위를 밀어보았다. 꿈쩍도 않았다. 도령은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정을 하여 5명이 합심하여 밀었다. 간신히 옮겼는데 드디어 굴의 입구가 나타났다. 드디어 남편 두꺼비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청년의 꿈에 두꺼비가 "도령님 감사해요.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사실 저는 용왕님의 딸이고 남편은 부마입니다. 수중궁궐에서 법도를 어겨 인간 세상에서 3년을 지내야 하는 처지에서 마지막 해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어바마마께 말씀드려 도령님을 돕도록 할 것입니다. 도령님은 가야 수도 김해에 가시면 먼저 군사책임자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세요" 하였다.


 청년은 김해에 도착했다. 남으로 바다가 확 트여 시원한 해풍이 불어오고 외국으로 오가는 큰 배들을 보면서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곧장 군사 책임자 집으로 찾아가서 하인으로 일하겠다고 하였는데 마침 일꾼을 구하려던 차에 잘됐다면서 일하게 하였다. 그 집 주인은 임금님 아래 일하는 천부경이란 높은 벼슬한 사람의 친척으로 군을 지휘하는 책임자였다. 청년은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을 하여 주인에게 신임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의 꿈에 두꺼비가 또 나타나 "도령님 적군이 침략할 것인데 장맛비를 대비하라 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청년은 주인에게 말했다.
 "나으리 신라병이 쳐들어올 터인데 장맛비를 대비하십시오."
 "아니 네가 어찌 신라군이 쳐들어오는 걸 아느냐 나는 이미 염탐꾼으로부터 들어 대비책을 생각하며 걱정하고 있는데……."
 청년은 두꺼비에 대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 당시 가야와 신라가 나라의 기틀을 잡히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기세가 일어 지금의 낙동강인 황산강을 겅계로 팽팽하게 대립하여 충돌이 일어남은 어쩔 수 없었다. 두 나라는 서로가 먼저 공격을 하기도 하고 막기도 하였다. 군사 책임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군사들에게 장맛비에 대한 준비를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로 하게 하고 성을 완벽하게 대비하게 하였다.


 신라는 수년 전 가야를 침공했으나 가야군의 복병전술에 휘말려 대패하고 돌아간 적이 있어 설욕전을 벼르고 있었다. 드디어 신라 지마왕 55년에 왕자신이 1만여 명의 군대를 지휘하며 공격해 들어왔다.
황산강에 당도했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적들은 배를 타고 건너왔다. 미리 대비한 가야군은 빗속에서 철저히 분쇄하였고 일부 성으로 공격하는 적군을 준비하는 대로 과감하게 격파하였다.
신라군은 유리한 입장에서 공격하는 가야군에게 밀리어 허둥지둥 자기 나라로 퇴각하고 말았다. 가야군은 승전고를 울렸다. 군사책임자 주인은 청년을 격찬하고 임금에게도 건의하여 적절한 벼슬과 상을 내리게 하였다.


 청년은 두메산골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김해로 모셔오고 높은 신분의 규수와 혼례를 올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 이후 사람들은 두꺼비를 신령한 생물로 보고 예사로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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