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남명이 정인홍에게 준 '대학' 후문에 팔조가(八條歌)를 첨부한 것은 유자의 필수 교재로 '대학'에서 밝히고 있는 학문의 대요(大要). '대학' 경문(經文)에 있는 명명덕(明明德)·친민(親民)·지어지선(止於至善)의 셋을 가리켜 삼강령이라고 하고, 평천하(平天下)·치국(治國)·제가(齊家)·수신(修身)·정심(正心)·성의(誠意)·치지(致知)·격물(格物) 등 여덟 조목을 가리켜 팔조목이라 한다.

 '삼강령·팔조목'이라는 명칭은 '예기'의 편명(篇名)으로 있었을 때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남송의 주희(朱熹)가 '대학'의 장구(章句)와 주석을 낸 뒤 '대학'이 사서(四書)의 하나로 격상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삼강령 가운데 친민의 '친(親)'을 '신(新)'으로 해석하여 친민을 신민이라 하고 그 의미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삼강령·팔조목은 대학, 즉 큰 학문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서 횡적으로는 삼강령과 팔조목이 서로 독립된 항목이지만, 종적으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한 항목이라도 없으면 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대학'은 처음부터 삼강령·팔조목으로 설정하여 엮은 것이 아니다. 다만. 후학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편의상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 삼강령 중에서 明明德과 親民은 본말(本末)의 관계에 있으며, 지어지선은 명명덕과 친민이 지향하는 표적(標的)이다.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의 다섯 조목은 명덕을 밝히는 것들이고, 제가·치국·평천하는 백성의 명덕을 밝혀 백성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또한, 격물·치지를 함으로써 지선의 소재를 인식하게 되고, 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함으로써 지선을 얻어 머무르게 된다.

 삼강령·팔조목에 대하여 '대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하에 명덕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나아가서는 백성의 명덕을 밝혀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다 그 고유의 명덕을 가지게 한다.
 
 사람마다 다 그 고유의 명덕을 밝힌다면 각기 제 마음씨를 성실하게 하고, 각기 제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기 제 몸을 닦고, 각기 제 어버이를 친(親)하고, 각기 어른을 공경하여 천하의 평화가 이룩된다.

 그러나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으므로 천하를 평화롭게 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또한 나라의 근본은 가정에 있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며, 가정의 근본은 자신에게 있으니 가정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몸을 닦아야 한다.

 그런데 몸의 주체(主體)는 마음이니 혹시라도 그 본연(本然)의 정직함을 상실하게 되면 몸에 주(主) 되는 바가 없어져서, 비록 부지런히 몸을 닦으려고 해도 역시 닦을 수가 없다. 따라서 몸을 닦으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먼저 제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정인홍이 처음 남명을 뵌 것은 15세 전후이다. 일찍이 합천 고을에서 이름난 천재로 해인사에서 글을 읽었고 뇌룡정에서 남명의 가르침을 받았다. 32세 때 남명이 산해정에 교학의 장을 열자 그곳을 찾아 지경(持敬)공부에 몰두 하였다. 남명은 독실한 지도로 정인홍을 지도하였다. 그로인해 남명은 항상 간직하고 있던 敬義가 새겨 진 칼을 전수 하였다.

 남명과 정인홍의 사제관계는 조선 유학사에서 흔하지 않은 사제관계로 '만남의 변화'를 주었다. 남명으로서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즐거움을 찾았고, 정인홍은 스승의 지도로 일생일대에 삶의 좌표를 설정한 것이다. 정인홍은 자신의 문인을 주축으로 임란 의병을 창의하여 예하 의병이 한 때 3천 명에 이르렀다. 필자는 1992년 그의 선비 정신을 '교육사상연구' 창간호에 '내암 정인홍의 선비정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부산일보서 강연을 하여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정인홍은 향촌사회에서 성공한 교육자이며 남명학통의 정통 계승자로서 경상우도의 보물 같은 존재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