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얼굴 / 양해남 지음 / 사계절 / 448p / 3만 3천 원

 

 처음 영화관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밤길을 걸어 극장에 들어섰다. 
그 극장이 김해극장이었는지 금보극장이었는지, 무슨 영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엄청나게 큰 화면이 눈앞으로 와락 달려들 듯 펼쳐지던 그 순간만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극장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로봇 태권브이'를 보면서 극장이 떠나가라 친구들과 주제가를 따라 부르던 기억, 반공영화인지 새마을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인지를 단체로 보고 감상문을 쓴 기억도 있다.

 세상이 변해 볼거리가 지천으로 열렸지만, 여전히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근사하다. 어두운 극장을 환하게 밝히며 눈앞으로, 아니 마음속으로 쑤욱 밀려 들어오는 영화는 늘 '옳았다!'. 누구나 영화에 대해 이런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올해는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영화가 얼마나 많았을까. 영화 자료 수집가 양해남 씨가 자신이 소유한 2천 400여 점의 한국 영화 포스터 가운데, 1950~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 248점을 골라 소개하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국내 영화 자료 수집가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이다. 한국 영화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관리하는 한국영상자료원조차 양해남 씨의 협조가 없다면 책자 하나 만들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가치 면에서도 뛰어나다. 해남 씨가 소장하고 있는 2천 400여 점의 포스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유일본이거나 희귀본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옛날 극장에 걸려 있는 포스터,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의 자료 화면으로 쓰이는 포스터의 상당수가 양해남 씨의 소장품을 복사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1950년에서 1989년에 제작된 한국 영화 포스터로 시기를 40년간으로 특정 지었다. 그 이유는 해방 이후 본격적인 의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199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찾아오기 직전까지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40년 동안 한국 영화가 성장기와 황금기, 쇠퇴기를 거치며 한 사이클을 매듭지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40년간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각 시기 영화 포스터들의 안팎을 집요하다 싶을 만큼 샅샅이 읽어냈다. 종이의 재질과 규격에서부터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인쇄하던 방식을 보면 당시의 인쇄술도 볼 수 있다.

 손 그림이나 스틸 사진을 활용한 인물 묘사, 카피를 통해 주제와 정서를 전달하던 문법, 한 시대의 얼굴이 된 스타들과 소리 없이 사라져간 배우들, 자기만의 영상 언어로 하나의 세계를 펼쳐 보였던 뛰어난 감독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포스터 곳곳에 남아 있는 검열의 흔적을 볼 수 있고, TV에 빼앗긴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 몸부림치던 안타까운 시도들까지 찾아냈다.

 영화포스터는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던 이미지, 하고 싶었던 일과 듣고 싶었던 말, 권력의 폭압 아래 억눌린 욕망들을 담은 영화와 포스터. 당대의 가장 대중적인 정서와 통념을 담아서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 게시되었던 영화 포스터. 한 시대의 사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책을 펼치다 보면 그 시절 영화 간판들까지 보이는 듯하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