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파도야 풍랑이여 이제는 멈추어라’
‘그 많은 생명 앗아 슬픔이 넘쳤거늘’
‘지아비 잃어버린 아낙들 바라보라’
‘이제는 잠잠하여 서러움 달래다오’

청년의 노래는 망망대해 바람에 실려 수평선으로 너머로 실려갔다. 신기하게도 노래 부르고 나면 서서히 바다가 잠잠해지는 게 아닌가. 모든 사람들과 도주는 이 청년을 좋아하게 되었다.
용왕의 따님도 이 청년을 좋아하여 결혼하기를 원했다. 고기잡이가 대부분인 섬사람들은 모두가 용왕의 따님과 결혼하여 이곳에 살면서 바다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청년은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착하고 아름다운 사랑하는 처녀 호연이가 마음에 가득했다. 달 밝은 밤 서재골 기슭 차 밭에서 나눈 뜨거운 사랑은 너무나 황홀했고 그 언약은 가슴에 사무쳤다. 청년은 진퇴양난이었다. 몸시 괴로웠다.

‘섬사람 용왕님 딸 모두가 날 원하네’
‘하지만 굳은 언약 고향의 내 님이여’
‘나는야 괴롭다오 이 일을 어이하리’
‘저 달은 알으실까 내 마음 아프다오’

그 이후 청년의 노래는 어두움이 깔렸다. 용왕님도 "음…… 청년의 노래가 전같지 않구먼."
청년은 밤낮 괴로워하다 병이 들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드디어 청년은 숨을 거두고 만다. 도주와 섬사람들은 아쉽고 슬퍼서 양지 바른 산기슭에 묻어 주었다.
한편 왕자는 일본 왕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고구려 침공에 대비한 연합군 창설을 요청하였다. 왜왕은 그동안 가야에 입은 은혜를 생각하며 기꺼이 응하겠다고 하였다. 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왕자는 청년을 싣고 가기 위해 대마도(쓰시마)에 당도했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 고향의 처녀 호연이도 그 소식을 듣고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이듬해 총각의 무덤에는 보라색 달개비 꽃이 피었다. 처녀 무덤에도 달개비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이 꽃말을 ‘짧은 행복 슬픈 당신의 모습’ 이라 하였다. 지금도 해마다 가야 고도 김해 지역과 대마도에는 보라색 달개비 꽃이 유난히 많이 피어나고 있다.

<제 33화>
 황옥 공주 김해로 시집오다

 유난히 꽃이 많고 평화로운 인도 아유타국에는 행복한 공주가 살고 있었다. 왕궁에서 자라온 예쁜 황옥 공주는 꿈 많고 호기심 많은 소녀이기도 했다.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에게 곧잘 물어보곤 했다. 그럴 적마다 부모님은 웃으시며 말씀해 주셨다.
 어느덧 공주가 16살 되던 해 오월 부왕께서 왕후와 함께 공주에게 말씀하셨다.
 "어젯밤 꿈에 옥황상제를 만나보았노라. 그분의 말씀이 가락국 임금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와 왕위에 오르게 한 자이니 신성한 사람이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않았으니 모름지기 공주를 보내 그의 베필을 삼으라 하셨다. 그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구나. 공주는 이제 부모를 하직하고 그곳을 향해 가야 할 것이니라."
 공주는 너무나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러나 당차고 호기심 많은 공주는 부모님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다. 부모님이 준비해 주시는 물건과 신하 20여 명을 데리고 바다로 떠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거대한 태풍을 만나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바닷바람을 잠재우는 영험을 가진 진풍탑을 싣게 하여 다시 출항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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