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선비문화를 찾아서 8

 요즘 주말이면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어 만물에 싹을 틔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가 봄기운에 도움을 주지만 하필 주말에 내려서 상춘객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가 보다. 그나마 비오는 날은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어서 밝은 봄 햇살을 볼 수 없고 일상을 고립 시키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지구는 점차로 화기로 데워지고 환경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니 어찌하랴. 1540년대 산해정은 깊은 산속에 숲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일조량도 짧은데다 굿은 비마저 오래 동안 와서, 외로운 산속 생활을 더욱 가라앉게 하고 있는 거처에 대한 심사를 시 [山海亭 苦雨]로 남겼으니,

 산속의 거처 늘 밝지 못하는 가운데 있기에
 해를 볼 기약 없고 땅을 보기도 어려워라
 하느님(상제)은 도리어 경비를 단단히 하여
 얼굴 반쪽도 일찍이 열어 보인 적 없다네.

山居長在晦冥間 / 見日無期見地難 / 上帝還應成戍會/ 未會開了半邊顔.

 이 무렵 남명의 친구 이희안(李希顔, 1504~1507 )이 산해정을 왕래하였으니, 이들은 서로 성향이 같은 절친한 벗으로 같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황강의 정자에 시를 써주고, 황강의 묘갈명과 정부인 최씨의 묘표(墓表)도 지었다, 최씨 부인의 증조부는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최윤덕 장군이다. 그의 자는 우옹(愚翁)이고 호는 황강(黃江) 본관은 합천으로 초계인이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고령 현감직을 받았으나 경상감사의 그릇된 정사에 분개하여 곧 사직하고 돌아왔다. 제자로 전치원(全致遠,1527~1596) -후일 남명 제자-임란 의병장이 있다.
남명은 황강정사에 시를(題黃江亭舍)지어 우의를 다졌으니,

 길가 풀은 이름 없이 죽어가고
 산의 구름은 자연스레 일어나는구나
 강은 가없는 한을 흘려 보내면서
 돌과는 다투지 않는다네

 
 路草無名死 / 山雲恣意生 / 江流無限恨 / 不與石頭爭

 황강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시 한수(聞李愚翁還鄕)를 전하니,

 산해정서 꾼 꿈이 몇 번이던가
 황강 노인 빰에 흰 눈이 가득한 것을
 금마문(관직 제수 3번)에  이르렀지만
 임금님은 만나 뵙지 못하고 돌아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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