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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이 아니라 수행의 불교여야 한다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모은 것이 지금의 팔만대장경입니다. 이러한 대장경에는 여러 가지 부처님 말씀을 적어두고 있지만 초기경전의 말씀은 대부분 출가한 스님들을 위한 것으로, 출가자의 생활이나 수행 등 율장의 성격의 띠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원음을 느낄 수 있는 숫타니파타, 4부 니까야 및 4부 아함경 등의 초기경전을 살펴보면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천신들과의 대화, 왕들과 바라문 등과의 대화가 대부분이며 재가불자들을 위한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모든 말씀은 재가불자들에게도 열려있을 뿐 아니라 중생들에게 차별 없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그 가르침은 대중 속으로 전파되면서, 출가수행자의 특별한 삶 뿐만 아니라 재가 불자들의 평범한 삶을 위한 이정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깊은 깨달음을 주신 내용들을 보면, 마하마나 경이나 앵무경, 그리고 미가살라경 등과 같이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재가불자들의 신행생활에 대해 설한 초기경전도 있지만, 재가불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마경이나 승만경과 같은 경전도 있고, 부분적으로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보살이라는 위치로 등장하는 법화경이나 화엄경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승경전은 재가불자들에게 출가수행자와는 차이가 있는 법을 설하셨는데, 이는 재가불자의 일상적인 삶과 조화될 수 있으며, 동시에 성불을 지향하는 삶인 보살의 육바라밀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대승적 가르침의 사회적 수용은 결국 대승불교의 시대를 열었으며, 이때 재가불자들은 불교의 형태를 출가불교에서 재가불교로 이동시켰습니다. 신행의 중심도 무아·연기의 인식을 찾는 구도 행위보다는, 삶을 중심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바라밀행과 보살행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이 바라밀행과 보살행은 과거에는 물론 지금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또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큰 가르침입니다. 이는 오히려 경쟁의 한가운데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더욱 확실한 이정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친 참뜻이 일체중생을 성불케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방편으로서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가는 무아의 실천 덕목으로 바라밀행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바라밀이란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즉 보살이 고통의 이 언덕에서 해탈의 저 언덕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뗏목이나 나룻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우리의 삶과 세상을 바라밀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나도 한 때 그대와 같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 바라밀의 지혜로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바라밀의 형성을 짚어 봐야 하는데, 지계는 보시로 완성이 됩니다. 지계가 지계로 멈출 때 자비는 사라집니다. 인욕은 정진 속에 이루어집니다. 방편은 바라밀의 구체적 방법론으로 구현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라밀은 한가지의 수단이나 일순간의 요령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바라밀은 몸과 마음의 경지가 아니라, 삶에서 구현되어 체화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가는 무아의 실천 덕목으로 체화된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바라밀의 방향은 항상 보살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라밀행은 보살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바라밀은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이고득락', 즉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해방을 성취하고 완성하는데 필요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 신행의 현장에서는 바라밀행과 보살행은 그다지 구체화 되지 못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오히려 보살행의 지향보다는 부쩍 수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행하는 한국불교' '수행론 연구계발' '수행 가풍의 진작' 등의 슬로건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그런 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중점적으로 내세운 가운데, 한국불교 신행은 대승불교가 추구해온 바라밀행과 보살행에서 저만치 비껴 있는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이란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 정도로 생각하지만, 한국불교를 독·과점하고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있는 선종 중심의 한 종단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간화선)을 하는 일'을 수행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재가불자의 몫으로는 고작 기도, 불공, 제사, 마음챙김, 선정 등으로 채운 것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불교가 다시 깨어나, 출가·재가자의 수행이 참선보다는 바라밀행과 보살행의 활력을 되찾는다면, '화엄경'이나 '법화경'에 나온 무수한 보살들은 경전으로부터 나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것 입니다.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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