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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의 함정에서 벗어나기이유갑 가야대학교 대외협력처장/ 심리학박사
이유갑 가야대학교 대외협력처장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이 사방에 퍼지면서 품격높은 꽃으로 칭송받는 매화에 이어서 노란 산수유가 화사하게 피었다. 앞으로 목련과 벚꽃, 그리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쭉 이어서 그 고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어도 봄은 정녕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약동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일시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군중행동(Mob behavior)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경향성의 주된 원인들을 연구해 온 사회심리학자들은 두 가지의 중요한 요인을 찾아냈다. 첫 번째는 익명성의 요인이다. 수많은 군중이 모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는 심리 상태에 빠져들게 마련이고, 따라서 평소에는 생각조차 못했거나 생각은 있더라도 결코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책임감의 분산이라는 요인이다. 혼자나 소수는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군중의 숫자가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무리속의 개개인은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 줄어들거나 아예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는 심리적 유혹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군중들의 행동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의 과격적인 양상을 뛰게 되기도 한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몰개성화(Deindividualism Theory) 이론'을 제시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게 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회의 규범이나 질서를 어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이 이론은 그 이후에 포스트메스(Postmes)와 스피어스(Spears)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더 확실하게 검증되었다.
 
 개인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자신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자신의 원래 생각을 바꾸거나 행동을 바꾸게 된다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 페스팅거(Festinger)는 이를 ‘탈개인화 이론’이라고 불렀다. 즉, 집단속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의 개성이나 정체성 및 책임감에서 쉽게 벗어나게 되어 평상시에는 하지 않을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게 만든다고 하였다.
 
 이 이론이 적용되는 많은 사례들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우선, 한국인에게는 내가 아는 사람일 때와 내가 모르는 사람일 때의 행동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유의 사회심리적인 속성이 있다. 아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는 무척 냉랭하고 불친절할 뿐 아니라 심지어 적의를 가진듯한 얼굴 표정이 나타나기도 하는 흥미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사이버 상의 언어폭력은 또 다른 사례이다. 인터넷에서 도를 넘어선 악성 댓글과 허위? 왜곡의 댓글이 많아지는 주된 이유가 익명성 즉, 나의 구체적인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심리적인 내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계속 가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상처를 주는 폭력적인 악순환이 이어져서 숨 쉬고 살기조차도 힘들만큼 거칠고 삭막해질 것이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제도적인 보완책도 필요하지만 나의 말 한마디나 행동이 남에게 씻지 못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우리들의 자각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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