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22> 우리들의 누이

우리들의 누이

<김해책방 22>
우리들의 누이 / 홍정욱 지음 / 이후 / 332p / 1만 3천 원

김해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필자는 봄이면 동네 언니들을 따라 산이나 들로 나가 나물을 뜯었다. 쑥 밖에 몰랐던 나에게 달래도 가르쳐 주고, 삐삐를 뽑아 주던 언니들이었다. 어느 봄날, 언니들 중에서 한 명이 도시로 갔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일하러 떠났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그 언니를 서서히 잊어갔다. 몇 달이 지나고 추석 무렵, 언니가 집에 다니러 왔다.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들고. 언니의 남동생들이 새 옷을 입고, 과자를 들고 나와 자랑 했다. 철이 없었던 나는 도시에서 선물을 사들고 오는 언니가 없는 것이 속상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언니가 논 한마지기 없이 농촌에 사느라 남의 집 일을 하며 사는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남동생들 공부시키기 위해 공장으로 일하러 갔었다는 것을.


 홍정욱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누이'를 읽는 동안 그 언니가 생각났다. 이 소설 속에 내가 잊고 살았던 그 언니가 있었다. 소설은 작가의 작은 누나의 삶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작가는 1966년 경남 함안 군북면 유전늪 옆 마을에서 태어났다. 누나들의 도움으로 부산교대를 졸업했고,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작은 누나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누나의 삶을 돌아보며 이 소설을 썼다.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니는 중학교 졸업하고 이 기차를 타라. 마산이든, 부산이든 알았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부산의 공장에 취직했던 언니가 여동생까지 자신 같은 처지가 될까봐 한 말이다. 그러나 동생도 중학교를 1년 다니고 공장에 취직했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병석에 누워 있었고, 남동생은 세 명이나 줄줄이 달려 있었다. 두 딸은 집에 보탬이 되고, 남동생들 공부시키려고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이런 사연이 흔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들의 누이'는 그렇게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은 '이구남'이다. 이구남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부산의 공장에 취직했다. 일은 힘들었고,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고 견뎠다. 공장에서 몇 년을 일한 뒤에 갈빗집으로 옮겨 일했다. 독학으로 조리사 자격증도 따고 일식집에서 자리도 잡았다. 결혼을 하면서 고단했던 삶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나 했는데, 남편이 그만 중병으로 사망했다. 홀로 남은 이구남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불어난 계곡 물에 차가 휩쓸려 생을 마감한다. 한번도 다리 쭉 펴고 살아보지 못했던 삶이었다. 소설은 한 세대 전 산업현장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현실을 전해주고, 슬픈 결말로 끝난다.


 홍정욱 작가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은 1960~1970년대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의류공장, 신발공장, 가발공장, 각종 산업과 공업 현장의 여공들…. 가난한 살림에 허덕이는 부모님 돕자고, 남자형제 공부시키자고 자신을 희생했던 딸들이 있었다. 그 여성들 덕분에 집안 살림도 일어나고 나라 경제가 일어났다. 우리들의 언니, 우리들의 누이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었다. 김해에도 이런 누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그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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