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가야를 대표하는 철정을 만들어내는 김씨 집안에서는 갑자기 먹구름이 덮쳤다. 최고 기술자인 큰아들 김 도령이 어젯밤 누구엔가 납치당해 갔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도 긴장하였다. 김 도령은 가야 최고 제철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철광석에서 철은 분리하는 법과 철의 강도를 높이는 아주 중요한 기술을 개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도령의 집안은 김수로의 친척으로서 철 기술에만 매달려온 수로족이었다. 만든 제품들은 농기구로 가야의 농업 생산을 높였을뿐만 아니라 수출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큰 역할을 했었다. 그런 가운데 그의 기술을 빼내기 위해 붙잡아가려는 세력이 있었다.


 어느 날 늦게 집으로 가는 도중 괴한들에게 붙잡혀 갔다. 김씨 집안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정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방을 붙였다. 김 도령을 찾아오는 자에게 크나큰 상금과 벼슬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 필요하면 나라에서 지원도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도무지 어디로 끌고 갔는지 오리무중이었다. 그 즈음 낙동강 중류에서 사는 가난하지만 활과 칼을 잘 쓰는 바우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노모를 모시고 온갖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다. 바우는 이 소식을 듣고 나서기로 하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신분을 높이는 절호의 기회에다 어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굳은 결심을 한 것이다.


 잡혀간 김 도령의 행방에 대한 소문은 여러 가지였다. 북쪽 가야산으로 갔다는 설과 서쪽의 지리산 쪽 아니면 배에 살려 신라 쪽으로 붙들려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l 바우는 조정에 가서 장정 3명과 말 한 필을 지원받아 길을 나섰다.


 바우는 우선 북쪽 가야산 쪽으로 가기로 하여 칼과 화살을 메고 일행과 출발하였다. 가야산을 가는 도중 무척산 기슭을 지나가는데 노루 한 마리가 새끼를 물고 저쪽으로 지나가는 게 아닌가. 바우의 장정 한 명이 활을 뽑아 쏘았다. 노루가 화살에 맞아 새끼를 놓아둔 채 피를 흘리며 달아났다. 장정들은 노루 새끼를 구워먹으려 하였는데 바우가 살려주자고 하여 살려주었다.
 그날 밤 꿈에 노루 어미가 나타났다.


 "도령님 은혜 잊지 않겠어요. 도령님은 저 서쪽 지리산으로 가야해요." 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바우는 그 길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으로 갔으나 산이 너무나 크고 높아서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노루가 꿈에 나타났다.


 "도령님 뱀사골 큰 바위 곁을 유심히 살피세요." 하는 게 아닌가. 뱀사골 큰 바위를 찾아가 일대를 샅샅히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바위 아래 작은 동굴의 입구가 있었고 그 아래로 깊이 내려가야 하는 걸 알았다. 안에서 서늘하고 음습한 바람이 불어와 몸이 오싹해졌다.


 혼자서 들어가는 건 어려웠다. 바우는 말을 나무에 매달아두고 장정 3인과 입구에서 칡넝쿨을 타고 내려갔다. 동굴 속은 엄청 큰 공간이었다. 침침한 동굴에서 요괴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구부러진 동굴길 뒤에서 갑자기 칼을 든 괴한 3명이 나타났다.


 칼싸움이 벌어졌다. 장정 3명도 합세하여 싸웠는데 바우의 칼솜씨가 뛰어나 그들을 제압하였다. 이들을 처치하고 한참을 들어갔는데 이번에도 또 3명이 나타났다. 다시 불을 튀기는 칼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만만치 않은 싸움이었지만 비우의 비호같은 검술 안에 적들은 하나씩 하나씩 거꾸러지고 말았다.


 잡혀 있는 김 도령을 구출하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당을 제합한 후 다시 동굴의 길을 걸어갔다. 다행히 김 도령을 지키던 일당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술을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자고 있었다. 그들은 김 도령을 잡아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나라로 빼돌릴 계획으로 동굴을 택한 것이었다.


 김 도령은 우리 속에서 묶인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바우는 장정 3명과 김 도령을 어깨에 메고 굴 입구에 도달하였다. 칡넝쿨로 장정 3명이 한 사람씩 차례로 올라가고 혼수상태에 빠진 김 도령을 올렸다. 혹시 추격하는 자가 있을 것을 대비해 바우가 마지막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칡넝쿨이 내려오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쿵 하며 입구가 막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큰 돌로 입구를 막은 것이다. 기다리던 바우는 기가 막혔다. 장정들은 김 도령을 데리고 그들만이 말을 타고 돌아간 것이다. 이제 바우는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다.


 바우는 절망감에 빠졌다. 과도한 칼싸움에 지친데다 입구마저 막혔으니 그만 그 자리에서 풀석 주저앉아 몽롱하게 있었다. 꿈인지 생신지 저쪽에서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린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바우 님아’
‘효성도 지극하니’
‘천상의 뜻이로다‘
‘세상의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 하나’
‘하늘의 신비한 힘’
‘그대를 도우리라’

 노래가 들린 후에 노루가 다시 나타나 "도령님 지금 남쪽으로 가시면 동굴 속 물이 흘러갈 것인데 계속 따라가면 길이 있어요."
 "아! 사는 길이 있구나. 노루야 고맙다."
 술취해 잠들어 있는 일당들이 눈치채지 않게 돌아서 내려가 물길을 따라갔다. 조그마한 입구가 있는데 다른 곳의 물이 합류하여 그 아래로 떨어져 크나큰 폭포가 되어 있었다. 저 아래 폭포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폭포로 떨어지지 않고는 길이 없었다.


 바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판사판 폭포 밑으로 떨어졌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 밑으로 얼마나 내려간 것인지 모르나 다시 물 위로 올라와 헤엄을 쳤다. 드디어 물가로 나온 것이다.
 한편 궁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3장정은 임금님에게 바우는 적들과 싸우다 죽었고 자기들만이 간신히 살아서 김 도령을 구출하여 돌아왔다고 말했다. 임금은 바우가 죽은 것은 안타까우나 큰 공을 세웠다고 상을 주고 칭찬하였다. 궁중에는 음악과 춤으로 잔치가 베풀어 졌다.


 그러다 바우가 나타난 것이다. 3장정은 깜짝 놀라 얼굴이 새파래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죽을죄를 지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드디어 모든 것은 일백하에 밝혀졌다. 3장정은 옥으로 끌려갔다. 바우는 상을 받고 큰 벼슬을 하였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게 되었다.


 그 이후 가야 조정에서는 철 기술자에게는 특별히 신변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한다. 기야는 제철기술을 최고도로 발전시켜 낙랑 대방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철기를 비롯해서 높은 문화를 왜에 전수하는 역할을 하였다.


 철기 수출로 가야 백성들은 넉넉한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도 발굴되는 가야 유물 속에는 다른 나라의 귀금속 장신구가 많이 출토되고 있어 그들의 경제적 여유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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