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21>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권정자 외 지음 / 남해의 봄날 / 192p / 1만 8천 원

  졸업의 계절이다. 여러 언론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졸업식을 전하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늦깍이 학생이 된 할머니들의 졸업식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필자 역시 그런 졸업식에 참석해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김해도서관 성인문해교실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졸업식날, 도서관에서는 학생(할머니)들의 시와 그림 등 작품을 전시했다. 평소에 글씨연습을 하던 연습장, 공책, 일기장 등도 전시했다. 전시실을 둘러보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예전에는 가난한 집안살림 때문에, 남자 형제들 공부 때문에, 여자아이를 쓸데없이 왜 학교에 보내냐는 말을 들어야 했던 딸들이 있었다. 얼마나 학교가 가고 싶었을까. 얼마나 배우고 싶었을까. 배우지 못한 한과 서러움은 얼마나 길었을까. 글자를 몰랐던 답답함은 얼마나 아득했을까. 여러 생각과 감정이 밀려들었다.


 졸업식에는 경남교육청의 관계자 몇 분도 참석했다. 한 분이 졸업축사를 했다. 그 분은 일찌감치 와서 할머니들의 작품과 공책을 찬찬히 둘러보던 분이었다. 축사의 첫 마디는 이랬다. "제 어머니는 끝내 한글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미리 준비해온 축사를 미처 다 하지 못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지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졸업 당사자인 할머니 몇 분이 눈물을 훔쳤다. 준비해 온 축사 대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그 분의 말은 성인문해교실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나게 했다. 필자에게도 잊히지 않 는 졸업식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을 보면서 그 졸업식이 떠올랐다. 이 책은 전남 순천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 스무 분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다. 할머니들은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 초등반에서 글을 익히고, 순천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워 지나온 인생을 그림일기에 담았다. 그 그림일기가 책이 되었다. 눈물과 웃음이 담긴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고, 할머니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다. 가난해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얼굴 한 번 보고 결혼한 술주정뱅이 남편 시중들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내 몸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았던 모진 세월.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삶을 한 줄 한 줄 담담하게 써내려 갔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함께 녹아있다. 일제강점기, 순천지역에 살았기에 겪어야 했던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의 시대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상처 냈는지 알 수 있다. 일본군에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던 소녀시절 친구를 그리워 하는 마음, 전쟁 피란길에 죽은 동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아픈 시간까지 할머니들의 굴곡졌던 삶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그 이야기들을 빛내주는 건 할머니들의 그림이다. 할머니들은 순천과 서울에서 그림전시회를 가졌고, 미국을 비롯해 해외전시회도 예정돼있다. '순천 소녀시대'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인기도 높다.

 이 책을 보면서 "김해에도 멋진 할머니들이 많은데….김해에서도 이런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도 김해의 성인문해교실을 졸업하고 또 새로 입학하는 할머니들이 계실 것이다. '김해 소녀시대'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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