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한국인의 사유는 연역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전체 속에서 개별적 특수성을 부여하면서 통각적(通覺的) 직관적(直觀的) 전개의 사유과정이 발달되어 있다. 이 속에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조화와 질서 의식이 자주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므로 앎의 단계에서 지식 보다는 느낌과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전한다.

 이같은 예를 들면 남녀 간의 은밀한 애정표현의 경우 마음으로 느끼는 감성이 먼저이므로 너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확실한 인식을 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선뜻 말 못하고 가슴을 울렁이며 조이고 있다. 이는 도덕의식의 절대화로 자기 주체의 내재적 도덕성에서 삼가해온 생활 질서이다. 그러면서 자기내면에 파고드는 세계를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의 하나로 학문에서는 참 자기 속에 하늘(天)을 글어 당겨 나(人)와 하나 되게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으로 하늘을 내안에 끌어 들이려 하면서도 하늘의 명을 거역하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적 삶의 본적지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은 본적지를 잃어버리고 무분별하게 밀착시키면서 물질문화와 어울려 쉽게 친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은 소위 몇 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개인 이익주의 문화가 우리의  민족정서를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 가면서 돈의 노예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 영역에 걸쳐 노출된 문제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다수의 엘리트 집단에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되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된다고 믿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당위성을 의식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4년 12월 11일 노벨 평화상을 수락하는 연설에서 "인간의 현재 상태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당위성을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인간은 이성의 본성과 자연성을 벗어나 각자의 개성과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분석적인 지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유과정을 조절하여 하늘의 이법대로 천명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우리의 정식적 삶의 본적지를 찾을 수 있다.

 지성인이라면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관점은 주관적 독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정치 사회 지도자는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하여 정당화하려고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일단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보자는 태도는 국민을 기만하고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는 세상을 피곤하게 하는 정치인을 싫어한다.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 집안의 출신인 연암 박지원 (朴趾源,1737~1805)은 감시(監試)에 장원을 해 영조의 각별한 주목을 받으면서도 그는 대과(大科)를 포기하고 홍대용,박재가, 유득공 이덕무등과 교류하면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전개한 학자를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가 형식주의와 무사상성을 거부하고 독단주의를 비판한 글을 보면, "까마귀 날개보다 더 검은 것은 없지만, 빛이 비치면 엷은 황색도 돌고 연한 녹색도 되며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물건에는 일정한 빛깔이 없는 것인데 내가 먼저 눈과 마음으로 정해 버리고 만다"고 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함으로서 까마귀는 언제나 모두 검다는 식의 절대화된 이데올로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혼돈하고 쉽게 정돈 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필자는 '올바른 철학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로 나서는 자가 많다는데 둔다. 선현의 어록에 '독만권서행만리로(讀萬卷書行萬里路)'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걸은 후 세상을 논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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