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19]

 

 노을 / 김원일 지음
 문학과지성사 / 372p / 1만 2천 원


 

소설가 김원일은 한국 분단문학의 거장이다. 그의 고향은 김해 진영이다.
 김원일은 그의 문학인생 내내 한국전쟁에 대해 정열적으로 파고들었다. 그 이유는 월북한 아버지를 가진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고통스런 가족사를 경험해야 했던 그는 이 문제를 쓰지 않고는 어떤 작품도 쓰지 못할 것 같은 부채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원일 소설가는 김해로 문학기행을 온 적이 있다. 필자는 두 번에 걸친 ‘김원일 진영문학기행’에 모두 참여한 행운을 누렸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소설 ‘노을’을 소개한다. 독자들과 함께 진영에 온 김원일이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제 작품의 대표작들은 진영을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진영장터에서 그 말을 듣고 난 뒤 바라본 진영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기분이 생생하다. ‘노을’, ‘어둠의 혼’, ‘겨울 골짜기’, ‘불의 제전’ 등의 제목이 순간 스치고 지나가며 작품 내용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바빴었다.
 
 특히 ‘노을’은 진영이 훤히 보이는 듯, 익숙한 지명이 많다. 주인공 갑수가 멱을 감던 여래못은 진영에서 자란 아이라면 기억하는 한여름 놀이터이다. 진영을 잘 아는 독자라면 선달바우, 봉화산, 지서, 진영역, 설창리 등의 지명을 따라 가며 소설을 읽는 마음이 더 각별할 것이다.

 김원일 소설가는 진영에서 소설 ‘노을’을 설명할 때 이런 말을 했다. “진영은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첨예했던 곳입니다. 김해평야가 7천 정보 정도인데, 진영의 논들이 5천 정보였으니 진영이 얼마나 넒은 땅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논들을 7명의 지주가 차지하고 있었으니 진영 사람들이나 근방의 사람들이 대부분 소작인이었고, 힘들게 살았지요. 그래서 좌익운동이 더 치열했던 겁니다. 제 아버지는 진영 대창초등학교 3회 졸업생이고, 마산상고를 졸업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농민운동 겸 좌익운동을 했습니다. 가족사가 그러했고 우리의 민족사가 그러했으니 저 역시 자연스럽게 분단문학으로 작품세계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개인사, 진영의 역사, 우리나라의 비극, 김원일의 문학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현재 진영은 소설 ‘노을’ 속의 장면을 찾기 힘들만큼 많이 변했다. 그러나 김해에는 김원일 문학을 기념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작가의 고향인 진영에 문학비가 있다. 더구나 그 장소는 금병공원이다. 공원 산책을 가서 볼 수도 있고, 문학비를 목표로 방문해도 좋은 곳이다.

 2005년에 세워진 문학비는 작가의 서재 일부를 형상화 하여 조각가 정희욱 씨가 제작했다. 높이 1.7m, 가로 1.25m, 세로 1m의 크기이다. 비의 4면에는 탄생, 힘들게 자란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의 굴곡,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뜻을 새겼다. 작가로서의 삶은 서재의 모습을 새긴 비의 앞면이다. 비 옆에는 책 한 권을 따로 제작해 놓았다. 작가의 대표작 ‘노을’이다.
문학비 한 쪽 면에는 ‘노을’의 마지막 구절을 새겼다. “지금 노을 진 차창 밖을 내다보는 친구의 눈에 비친 아버지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고향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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