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나 꿈도 있고 사랑도 있고 의욕도 컷지만 젊은날의 병고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채 지금까지 저의 삶이 늘 그러했듯이 몸은 피골이 상접하여 만신창이 되어도 오로지 수행만이 제가 살길이고 가야하는 길이고 수행하다 죽더라도 그길을 가겠노라고 하는 절실한 마음! 그마음 깊은곳에는 항상 수행욕구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토록 꿈꾸며 갈망하던 수행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수행을 하여 도사가 되고 신통력을 부리고 신선도인이되는 등의 그런 비현실적인 신비주의를 추구하며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며 사는 염세주의적 이기적인 삶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 마음 도리를 깨우쳐 스스로 고통의 원인인 집착과 갈애, 무지 그리고 욕망에서 자유로워져 대자유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가 그토록 원하던 수행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을 헌신짝 버리듯 벗어버리고 또 한번의 목숨 건 수행을 굳게 결심하고 지리산 토굴에서 정진하고 계시는 인연이 있었던 스님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 스님께서 전화통화로 그냥 몸만 오라고 하시어 저는 바랑 하나만 어깨에 짊어진채 지리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참 어리석고 대책없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당시 저에게는 그 어떤 것도 걸릴 것이 없었고  그토록 제가 갈망하던 대자연에서의 수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은 충만함과 환희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하여 그 스님의 토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위가 바위로만 이루어져 있는 바위굴속을 수행처로 정한다음 최소한의 먹을거리는 그 스님으로부터 제공받기로 하고 지금껏 늘 그랫 듯이 수행하다 죽겠다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수행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공기맑은 대자연의 산천에서 홀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많습니다만, 사실 바른수행으로 정진해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뿐 아니라 갖가지 경계들에 휘둘려 사도(私道)로 빠져들어 크게 잘못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바른수행으로 바른법(正法)을 깨친다는 것도 전생부터 쌓아 온 선근공덕이 없으면 어려운 것이고 참으로 험난한 길임은 분명합니다.

 정법을 깨닫고자 수행하는 자는 세속적인 욕망과 몸둥아리 집착이 없어야 하거늘 만약에 탐욕심을 내고 죽는것을 두려워 한다면 한발짝도 나아가기 어려운 것이기에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갖가지 고난의 경계에서 죽어도 10번은 죽었을 몸이기에 현재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집착은 사치이고 욕심이라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기에 겨울 지리산의 혹독한 수행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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