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사실에 대한 오류로 생긴 착시현상을 나는 현실인양 생생히 경험했다.
 
 완만하게 굽어 도는 고속도로 곡선 구간을 지날 때 유리로 된 방음벽 너머에서 내가 주행하는 차선 쪽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무모하리만치 고속 주행하는 자동차를 발견한 나는 운전대 잡은 손에 바짝 힘을 주었다. 이쯤 어디에 접속도로가 있나보다 라고 여기다가 언뜻 내 차보다 앞서 달리는 왼편 차선의 차 행렬이 유리 방음벽에 비친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순간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바보!'하고 소리치며 웃고 말았다. 추월 차선을 주행하는 자동차가 유리 방음벽에 비친 거였다.
 
 현실이 사실 같지만 다르거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거울 속 자동차를 대상으로 방어 운전이라는 헛일에 최선을 다 했던 게 바보 같이 느껴졌다. 허상을 실재로 착각했던 그 순간은 사실상 나와 맞닥뜨린 현실적인 큰 문제였으며 일면 그것은 긴장감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불과 몇 초 뒤 그 사실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착시는 불필요한 긴장을 무마시키는 안도감과 함께 스스로에게조차 민망해서 혼자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현실의 중심에서부터 변두리까지 두루 섭렵해 온 시간들이 모두 사실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나의 궤적들을 되돌아보았다. 받아들이기 싫어 거부했던 사실들과, 사실 아닌 사실로 힘들었던 현실들을 떠올리니 시간이 흐른 뒤임에도 이해심이라는 관용의 탈과 당위성이란 불멸의 허상을 변명처럼 만들어 그 경계선에서 스스로를 모호하게 만드는 착시효과, 새로이 유도하는 현명한 바보를 채굴한다.

 담배 파이프를 그려 놓고 그림 하단에 프랑스어로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글을 써 놓은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떠올랐다. 이를 테면 우리가 사진을 보고 그 사진 속 인물이 자기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사실은 사진인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자신을 인식하는 가운데 사진 또한 자신이라는 모호한 현상을 붙들고 고민하면 철학함이 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자타의 관계 속에서 올무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스스로 자세를 고쳐 앉고자 착시로 살아가는 태도의 방석 자리를 살피곤 했다.

 소소한 일들이 주변이 되는 생활이지만 나에게 오는 일 만큼은 전부가 중요한 상황이 되니 착시는 그림자 같은 자아 깊숙이 잠입하는 현상으로 효과를 발휘한다.

 그날 내가 고속도로에서 내 자동차를 운전할 때 동시에 내 주변의 다른 차들도 자기 갈 길을 향해 충실하게 주행했을 것이다. 운전자들은 그 자신의 도로 상황에 집중하느라 아마도 방음벽 유리에 자기 차가 비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사실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며,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착시 현상은 내게 닥친 문제였을 뿐, 그들은 나름의 상황들을 문제로 겪고 해결하는 슬기로운 운전법으로 주행했을 것이다. 
 착시현상은 문제의 핵심 파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문제에 가볍게 닿도록 하는 타자 관점의 현실적 답을 제공해 주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열심히 살고 제대로 살기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아보리라 새해 벽두에 세운 소망, 일출을 마중나간 첫 날 '아침'의 '침' 자 위에다 도돌이표를 붙이고자 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비추일지 조바심하거나 궁금해 하지 않기, 착시라는 올무에 걸려 어느 대상에 대해 오해하지 말기, 도돌이표가 무한대다. 자존을 가꾸는 한 해를 사실로 만들고 싶다. 바른 가치관과 정의로운 행동을 궁구하는 자아 성찰과 성취의 착시 효과를 위해,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하나 장만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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