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손 전문 수술 외과 의사이자 나병 전문가인 폴 브랜드가 쓴 책, '고통이라는 선물'에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고통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대목입니다. 이 역설적인 기도는 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가 몸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치료의 적기를 놓치고 결국 심하게 손상된 손발을 잘라내야만 하는 비극의 현장들을 보면서, 인간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를 깨닫고 환희심으로 하늘에 올린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때로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되거나 피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도 그런 것 중의 하나입니다. 나병 환자가 일찍이 고통을 느꼈더라면 손발을 잘라내어야 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또한 고통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피하고 싶은 고통이 바로 하나님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토록 피하고 싶은 고통이야말로 우리를 더 큰 위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경고음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여러 가지 악업을 짓고 살고 있으며, 그로인해 고통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입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얻으시고 초전법륜을 설하신 내용 역시 "네 가지 진리라 함은 '고통에 관한 진리', '고통의 원인에 관한 진리', '고통을 없애는 것에 대한 진리', '고통을 없애는 방법에 대한 진리'이다"라고 말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이란 그리 간단히 없애거나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에게 곤란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제자들이 질문을 하면 부처님은 "왜 하필 나야?"라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여기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를 질문하라고 일깨우셨습니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모든 고난은 악업을 소멸하고 새로운 축복의 존재로 전환해 가는 과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명 고통은 긍정적인 시그널입니다.

 그럼에도 중생은 욕망과 집착이라는 근원적인 무명으로 인해 고통과 즐거움의 상태를 반복하게 됨으로써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불교는 이러한 삶의 양태를 고(苦)로 파악하고 모든 번뇌를 끊음으로써 괴로움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는 분명 끊을 수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번뇌 그대로가 곧 보리라는 것입니다. 중생의 낮은 소견으로 보면 미망(迷妄)의 주체인 번뇌와 깨달음의 주체인 보리가 전혀 딴판일 것 같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두 가지가 하나이고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번뇌는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번뇌를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 것입니다. 법화경에서 힘주어 가르치는 제법실상이 이를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당나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측천무후가 전국에 영을 내려 큰스님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수행과 지식이 출중한 신수대사와 일자무식이지만 수행에 전념한 혜안선사가 궁중에 들어왔습니다. 측천무후는 궁녀들에게 두 스님을 씻겨드리라 하고는 이들의 목욕광경을 목욕탕 뒤 뚫린 구멍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천하절색의 궁녀들이 몸을 씻겨 드리자 신수대사는 요동하는데 혜안선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측천무후는 혜안선사를 국사로 모시면서 "다리의 힘은 산에 올라가봐야 알고 키의 크고 작음은 물속에 들어가 봐야 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수행입니다. 번뇌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밖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밖에서 주어지는 환영에 내가 집착하고 속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문제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번뇌는 시작됩니다. 불교에서 줄 곳 공(空)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경험과 문제를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두 가지를 있는 그대로 보면 경험은 경험이고 자신은 자신 그대로일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의 황금률을 지켜야 가능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문제를 자신과 분리하기 위해서는 큰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을 때 그 문제에만 매달리면 시야가 좁아져 넓고 멀리 볼 수 없어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근시안을 벗어나는 길은 먼저 큰 맥락에서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용기를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내가 용기를 얻기 때문입니다. 삶의 아픔은 더불어 삶에서 해독하고 풀어 나가는 것이 삶의 황금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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