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어느날 공자가 조카 '공멸'을 만나 물었다. "네가 벼슬한 뒤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대답했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랏일이 많아 공부할 새가 없어 학문이 후퇴했으며, 둘째, 받는 녹이 너무 적어서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공무에 쫒기다 보니 벗들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공자는 이번에는 공멸과 같은 벼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제자 '복자천'을 만나 같은 질문을 했다. 복자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글로만 읽었던 것을 이제 실천하게 돼 학문이 더욱 밝게 되었고, 둘째, 받는 녹을 아껴 부모님과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셋째, 공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우정을 나누어 벗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공멸과 복자천의 차이가 있다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는 공직자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다 보니 삶의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여기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해석도 달라지고 있으니 어느 쪽이 옳고 좋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객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하는 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사고가 발전적이라고 본다. 그 사고는 어디서 나올가 당연히 마음이다. 자신을 잘아는 사람은 욕심을 버린다. 그리고 그 욕심을 버릴 줄 안다는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다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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