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의숨결 (12)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가야국 궁궐에서 해안선을 따라 서남쪽으로 30여리 떨어진 곳에 비음산이 있었다. 이 기슭 마을에는 친하게 지내는 두 연주자가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집성촌이었던 비음산 마을은 연음 마을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었는데 비음은 이 마을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이고 연음은 이곳 주민들이 하도 연주 연습을 많이 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의 현후란 청년은 피리를 불고 그의 친구 감분은 십현금, 가야금과 비슷한 '슬'의 연주자였다. 현후는 어릴 때 아버지가 철기술자로 만들기 위해 철 제련하는 곳에 보냈으나 도무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피리만 밤낮으로 불어 부모님도 하는 수 없이 음악가가 되도록 그냥 놓아둔 것이다. 감분은 타고난 재질에다 부모님도 연주가가 되기를 바라 자연스레 슬의 연주자가 되었다.
 
 두 친구는 우정과 예술을 같이 키워 가는 사이였다. 두 사람의 화음은 너무나 환상적이었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감분 청년이 병져 누워 앓다가 요절하여 저승으로 가고 말았다.
 
 친구를 잃은 현후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혼자서 친구를 생각하면서 함께했던 곡을 연주하며 눈물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 세월이 어느덧 3년이나 흘렀다.
 
 친구는 멀리 지리산 쪽으로 연주 요청이 있어 악기를 갖고 말을 타고 가는데 저쪽에서 여러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가운데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그 옆에는 부하 비슷한 10여 명과 아이들도 백여 명이나 거느리고 오는 게 아닌가.

 말 위에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을 보니 안면이 많아 자세히 보았다. 깜짝 놀랐다. 바로 그 감분의 얼굴이었다. 현후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그 옆으로 따라가서 보았다. 틀림없는 감분이었다.
 
 "자네 감분이 아닌가?"

 하니 그도 돌아보며 맞다고 하며 말에서 내렸다. 현후는 감분의 손을 덥썩 잡고 말했다.

 "자네가 죽은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이게 어인 일인가."

 친구는 약간 어색해 하며 말했다.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맞아. 난 3년 전에 이승을 하직했지. 사실 나는 죽은 뒤에 마마와 전염병 귀신이 되어 이승에 천연두나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다네. 지금은 지리산 쪽 그중에서 마음이 삭막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다 뿌려 놓고 가는 도중이지. 이 아이들은 모두 가야산 쪽에서 앓다가 죽은 아이들이야."

 현후는 "놀라운 일이네. 친구 자네는 평소 고운 마음씨와 음악 열정으로 훌륭한 연주자였잖아. 그 어질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

 감분이 말했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 상제의 명령이니, 나의 운명이라 해두지." 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자네가 사람을 살리는 데 조금만이라도 마음을 써 준다면 얼마나 좋을고. 친구여 내 말을 명심해 주게."

 "자네가 이렇게까지 말해 주는데 나도 마음을 모아 볼께. 하지만 병들고 죽는 건 어쩔 수 없다네. 평소 음악이나 시, 춤에 관심이 없는 감정이 굳고 삭막한 사람들이 흔한 동네에다 많이 뿌린다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으므로, 아무튼 내게도 한계가 있겠지만 자네 말을 참고하겠네, 그럼 잘 가게."

 그 친구는 말을 마치자마자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게 생시인가 꿈인가 현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렇게 헤어진 현후는 지리산 쪽으로 계속 갔다. 어느 동네에 들러 밤이 되자 잠잘 곳을 찾았으나 그 동네도 병이 돌아 아무도 재워 주지 않았다. 어느 한 집에서 간청하여 간신히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 집 아이도 병이 들어 있었다. 주인은 이 동네 아이들이 병에 걸려 절반이 죽었다고 하였다.
 
 "주인장의 아이를 살릴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시겠습니까?"

 "자식을 살리는 길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면 부뚜막에 음식과 술을 올려 제사상을 차리십시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주인 내외는 잔뜩 기대를 갖고 현후가 하라는 대로 하였다. 현후는 그 앞에서 제문으로 말하였다.
 
 "자네는 나와 약속한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이 아이를 죽이는 것은 자네와 같은 인자한 성품이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네. 마음을 돌려 이 아이를 관대하게 살려 주길 바라네. 나의 친구 감분이여."

 하며 허리춤에서 피리를 꺼내 불었다. 그런 후 죽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는 것이 아닌가. 주인 내외는 뛸 듯이 기뻤다.

 이 소문이 이웃에 전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기네 아이들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소?" 하고 물었다. 모두가 합심하여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동네 사람들에게 제사 준비를 하고 집집마다 서쪽에 붙어 있는 부뚜막에 가서 가서 부뚜막신인 조왕신에게 빌고 철제로 된 이동식 부뚜막을 가진 집은 마당에 차랴놓고 빌으라고 하였다. 거기다 악기 있는 집이 있느냐고 했는데 겨우 한 집만 슬이 있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