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15]

 곡옥(전 2권) / 이수정 지음
 전망 / 각 276p 내외 / 각 1만 3천원
 

 김해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대성동 고분군을 기억할 것이다. 철없던 시절, 그곳에서 놀았던 추억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추억이 있다.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 지는 잊어버렸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은 장면이 있다. 고분이 있는 언덕에 서서 해가 지는 풍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던 일이다. 어린 마음에도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던 그날이 지금도 떠오른다. 가야의 역사에 대해 배운 적도 없었지만 무의식중에 고분군의 풍경에 동화돼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대성동고분군에 서면 고분의 주인을 떠올리며 가야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소설가 이수정 씨는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을 걸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고 소설 ‘곡옥’을 썼다. 작가가 부산에서 살고 있는 큰오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 소설창작의 계기가 됐다. 고령의 대가야박물관을 다녀온 오빠는 대가야와 순장풍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장은 한 집단의 지배층 계급 인물이 사망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강제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따라 죽은 사람을 함께 묻는 장례풍습이다. 작가는 대가야의 순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순장된 사람들의 죽음은 스스로 택한 ‘순사’였을까. 아니면 관습에 떠밀려 억울하게 묻힌 ‘순장’이었을까. 억울하게 죽어야 했다면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직접 지산동 고분군으로 갔다.


 고령의 지산동에 있는 주산의 능선을 따라 200여기의 고분이 있다. 작가는 그 고분들 사이를 걸으면서 ‘순장’ ‘대가야’ ‘여인’을 담아 소설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잊혀진 제국 대가야에 관한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기껏 신라의 기록에 몇 줄 나오는 정도였다. 작가는 논문을 찾는 대로 상자에 쌓아두고 읽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썼다. 이수정 작가에게 한국소설가협회가 시행하는 ‘2016년 제7회 한국소설작가상’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이다.


 ‘곡옥’은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대가야의 마지막 여왕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 표지를 곡옥, 굽은 옥이 달려있는 왕관의 일부가 장식하고 있다. 이 책 제목의 풀네임을 다시 읽어보면 ‘잊혀진 제국의 딸 곡옥’이다. 소설 ‘곡옥’은 대가야가 어떻게 멸망에 이르게 됐는지 역사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곡옥은 굴절 많고 당찬 삶을 거칠게 또는 부드럽게 살아온 대가야의 수장이었다. 멸망으로 가는 나라의 운명을 부둥켜안고 꿋꿋이 나라를 지켜온 여장부이지만, 결국 신라 진흥왕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대가야를 떠나 신라에 의탁한 우륵의 가야금 연주, 가야의 땅을 음악으로 표현한 ‘하라가도’ 연주를 들으며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문학펑론가 전성태 선생은 이 책을 읽고 “가야의 가실왕이 만든 가얏고 소리를 들으며 절명하는 곡옥의 마지막은 이 소설의 ‘비극적 황홀감’의 순간이다. 음악만큼이나 소설의 결말은 청아하면서도 처연한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대가야의 몰락과 우륵의 가야금이 어우러지면서 사랑했던 대가야의 멸망을 지켜보는 곡옥의 마지막이 애잔하다. 가야를 잊지 말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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