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불교가 어렵다는 말은 진리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접근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은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은 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삶이 참다운 삶인가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바로 보살의 삶인 '보살도'입니다. 그런데 보살도에 대하여 화엄경의 보살과 법화경의 보살이 다르게 설명이 됩니다.

 궁극적인 보살도의 목표는 같음에도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연기의 이치로 단도리만 잘하면 결국 같은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입멸 후, 부처님의 가르침을 두고 20개나 되는 부파가 생겨나면서 불교는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다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유식하다는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총론 보다는 각론에 치우쳤습니다. 그리고는 전문성마저 띠게 되었습니다. 이는 불교를 어렵게 만드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모든 것을 연기로 풀면 매우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임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불가에서 '제법무아', '제행무상', '일체개고'를 들어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일체개고' 대신 '열반적정'을 꼽습니다. 이를 연기로 풀이하면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연기로 풀이하는 방법이 서툴 뿐입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거나, 우리 앞에 실체가 있어서 그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는 문명이 태동되면서부터 서툼이 시작되어 왔고, 또한 인간들에게 유일신적 사고가 절대적인 사실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관념을 깨어야 함을 부처님은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파사현정이요, 현상타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탄생한 것도 아니요, 실체가 있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파사'로부터 진리 탐구는 시작이 됩니다.

 일단 파사현정의 방식으로 삼법인을 생각해볼까요? 대부분의 스님들은 무명과 무지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고 가르칩니다. 무명과 무지를 같은 말이라고 친절하게 덧붙입니다. 무명과 무지 때문에 고통이 일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무명과 무지는 전혀 다른 철학적인 접근입니다. 단순히 어두움과 모른다는 사실적인 논리로만 보면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를 달리 본 부처님은 결국 파사현정을 이루게 됩니다.

 부처님은 무명으로 인해 고통이 생기는 것을 근원적 고통이라 하여 삼법인 중 하나인 '일체개고'라 이름 지었습니다.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고통일까요? 우리는 흔히들 변해가는 현상들을 두고 이를 이기지 못해 힘들어 합니다. 심지어는 늙지 않는 방법에 몰두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묘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그처럼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있는 실체를 들여다봐도 무상함을 모르면 변해버린 존재를 그대로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그런데 실체는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을 모르는 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한 순간에도 머물러 있는 실체는 없습니다. 항상 변함 속에 놓여 있는 실체는 찰라가 지나버리면 그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중생들은 그 실체에 죽자고 매달립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두고 움켜잡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고통입니다. 모든 것은 연기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도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 믿고 탐욕에 사로잡혀 고통을 받습니다. 반면에 무지는 무엇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우기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모른다는 것은 무식입니다. 무지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를 말합니다.

 변화하는 실체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만물을 형상화하여 그것이 실체라고 믿는 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무지는 '제법무아'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삼법인인 '제법무아'와 '제행무상', 그리고 '일체개고'는 그렇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터득하면 이것이 '열반적정'인 것입니다.
 
 연기의 이치로 푸는 부처님 파사현정의 방법입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다가오는 새해에는 연기의 이치를 따라 열반적정의 참된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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