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번째 도서 /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52p / 1만 2천 500원
 
 

추천 / 박현주 김해율하도서관 사서

 △사서의 추천이유
 왠만한 건 다 내 얘기 혹은 내가 모르는 옆 사람 얘기 같은 이기호 작가의 '왠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피식 웃음이 나서 두어 장 다시 앞으로 넘겨 제목을 확인하거나, 몇 줄 안 되는 짧은 글에서 느껴지는 깊은 여운을 음미하며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단편 소설 속 그들도 나처럼 행복하거나, 좌절하거나, 감동하거나,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듯 한 해도 살랑, 하고 넘어가려나보다. 큰일을 앞두고는 누구나 ‘괜찮다. 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다’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막상 지나고 나면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일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긴다면 가볍게, 하지만 관찰하듯이 찬찬히 읽어보길 권한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는 거지." "이만한 일로 좌절해서야 되겠는가." "액땜한 셈 치자."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당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일을 겪고 있다 싶은데, 주위에서는 모두 이런 말들로 위로를 한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기쁨과 슬픔을 겪으며 살고 있기에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위로한다. 크고 작은 일에 부딪혀 둥글어지고, 깊어지고, 넓어진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겠는가. 우리는 왠만해선 아무렇지도 않다.
이기호 작가의 ‘왠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짧은 이야기 40편과 예쁜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 어떤 문인은 이 책을 읽고 "울고 싶은가? 웃고 싶은가? 그러면 이기호의 ‘왠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읽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체감 불경기가 엄혹하고, 취업도 안 되고,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있다. 이기호 작가는 폼나는 삶을 살기가 불가능해진, 평생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삶을 유지하려 노력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작가 특유의 웃음과 눈물로 그렸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이 책은 2016년 발행 됐는데, 포항 시 외 여러 지역에서 ‘한 도시 책’으로 선정할 만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그’가 동물원에서 한 첫 데이트의 결말, SNS의 세계에서 ‘멋진 남자’로 살아가는 남편의 이중생활을 바라보는 아내의 솔직한 심경, 카드 값 때문에 아내를 피해 산으로 도망쳐 텐트를 치고 숙식하게 된 한 가장이 별에게 하는 말…. 책 속 이야기는 ‘웃픈 현실’이다. 주인공은 나이거나, 내 주변의 누군가를 닮아있다. 우리의 이야기이다.
짧은 분량은 소설이라기보다 콩트라고 보는 게 맞겠다. 빽빽한 활자로 가득한 책장을 넘길 여유가 넘는 사람들, 긴 서사를 읽는 훈련이 안된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 짧게 읽고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읽기의 즐거움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충족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짧은 분량, 긴 사유.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서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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