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의 숨결 (10)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가야 거등왕 때 궁궐에서 20여 리 떨어진 무척산 중턱 마을에 삼돌이란 청년이 살았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삼돌이는 집은 가난하였으나 성품이 매우 착한 청년이었다. 활솜씨가 좋아 부근에서 최고의 궁수라는 평을 받았다.
 
 삼돌이는 짐승을 잡아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산 생명을 죽인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리었다. 하지만 가난한 처지인 삼돌이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앞날을 약속한 사랑하는 아랫마을 분순이가 있었는데 어서 혼사 준비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짐승을 잡고 나서는 "미안하다 좋은 데로 가거라."하는 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삼돌이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산속으로 사냥을 나갔다. 정상 부근 천지 못 부근에서 멧돼지 한 마리가 숲을 지나가는 게 아닌가. 재빨리 화살을 장정하기 위해 활통의 화살을 빼려 했으나 하나도 없었다.

 "어! 화살이 없네. 분명히 채워서 갖고 왔는데...."

 그때 저쪽에서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았는데 백발을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서 있었다.

 "어르신이 내 화살을 가져갔군요."

 "허허 그래 좋아. 그럼 화살을 돌려 줄 터이니 백보 떨어진 곳에서 나의 머리카락을 쏘아보거라. 맞히면 내 비록 나이 많은 늙은이지만 자네를 나의 스승으로 모시겠네."

 "어르신을 쏘라고요? 저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제가 짐승을 쏘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는데 사람에게 활을 쏘다니요."

 받은 화살을 통에 다시 넣고는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고 돌아가려 했다.

 "잠깐만 기다리게."

 백발노인은 삼돌이를 다시 부르며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젊은이가 나를 쏘지 않겠다면 이 도토리 열매를 쏘아보게."

 삼돌이게게는 그런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노인에게 나의 실력을 보여 주어야지 하며 활을 들었다.
 
 명중이었다. 의기양양해하는 삼돌이에게 노인은 또 제안을 하였다. 도토릴 3개를 주면서 한 뼘씩 간격을 두고 백보 앞에서 두 번을 쏘아 3개를 같이 붙여보라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노인은 허허 웃으며 "그래 자네가 못 하겠다면 내가 해볼까."

 하며 삼돌이의 활을 빌려 2번을 쏘았다. 신기하게도 도토리 3개가 나란히 붙여진 게 아닌가. 노인의 실력에 감탄한 삼돌이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어르신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노인은 말했다.

 "사실은 자네가 활을 잘 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찍부터 나의 제자로 삼으려 했다네. 보아하니 살생을 예사로 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걸 보니 나의 제자로 삼을 만하도다."

 드디어 삼돌이는 노인의 제자가 되었다. 스승은 말했다.

 "자네의 명중도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겠고 집중해야 할 게 사정거리의 확장이네. 더 먼 곳의 목표물을 맞히는 수련이 필요해. 무예의 길이란 형극의 길임을 명심하게."

 한편 결혼을 약속한 분순에게는 어떻게 말할까를 고민했다. 3년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삼돌이를 사랑하고 있는 분순은 삼돌의 마음을 읽고 기다리겠다고 약속하였다. 약속해주는 분순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삼돌이는 더우면 천지못에서 목욕을 하고 잠시 위었다가는 신들린 듯이 배우고 연습했다. 삼돌이는 신기에 가까운 실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달밤에도 활을 쏘아 엄청 먼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명중시켰다. 가히 신궁의 경지가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어느 날 밤 천지못 아래 폭포에서 노인은 삼돌이를 불러 앉히고 "이제 자네에게 나의 기술을 모두 전수하였노라. 그러니 앞으로 나를 찾지 말게."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스승님! 스승님!"하고 불렀으나 아무 응답이 없이 허공만 바라보았다. 폭포물은 쏟아지고 밤하늘의 별빛만이 총총하였다.

 삼돌이는 마을로 내려왔다. 삼돌은 분순이를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하며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 당시의 가야의 거등왕은 왕자 선을 일본 북규슈에 보내어 그 일대를 정복하여 가야계 왕국을 수립하였는데 남해안 일대에서 포상팔국난이 일어난 것이다. 국력이 커가던 가야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김해를 중심한 가야의 해상 독점권에 반기를 든 다른 해얀지방 세력이 연합하여 일으킨 반란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해상전이다. 전투에 필요한 젊은이를 모았다. 삼돌이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출전하였음은 물론이다. 분순이는 삼돌이가 살아서 돌아오기를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드디어 가야 제일의 명궁수 삼돌이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대로 궁수의 임무를 맡았다. 삼돌이가 배치된 배는 사기가 충천했다. 그러나 신궁 삼돌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의 화살로 사람을 쏘아야 하다니...'

 하지망 어쩌랴.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사랑하는 분순이와 결혼도 해야 하는 일이기에...

 삼돌이는 가능한 적은 숫자를 죽이고 이기는 방법이 무얼까를 고심했다. 적의 배에 불달리 화살을 적선에 쏘는 방법도 있었지만 적국의 장수에 활을 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판단했다.
 
 사정거리가 넘은 적의 배 쪽에서 지휘하는 장수나 지휘관을 골라 명중시켰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군사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드디어 전쟁은 생각보다 단기간에 끝이 났고 삼돌이는 궁중에 불려가 상을 받고 가야의 장수로 임명되었다. 어머니와 분순이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가야 조정의 실권을 가진 신하가 자기의 따님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삼돌은 분순이와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사정을 말하고 간곡히 거절하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실권을 가진 신하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신하는 삼돌 장군을 가야 조정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였다.
 
 신하는 왕에게 영향력을 미쳐 북규슈 왕국과 협의하여 삼돌 장군을 그곳으로 보내어 군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맡도록 하였다.
 
 그 당시 규슈 북부 이토시마 반도 일대와 동남부 히무카 지방에 가야인들이 집단 진출하여 정착, 기비지방 혼슈의 각지와 시코구에도 진출한 것이다. 그래서 가야의 지명을 딴 가야산, 가라 마을, 가후라 해안 등이 남아 있다.
 
 삼돌 장군은 분순이와 결혼식을 올리고 어머니와 함께 북규슈로 가서 그곳에 중견 책임자로 부임하였다. 삼돌 장군은 그곳의 군대를 강화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남도지방에 위치한 이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야가 생기기 전 구야국 시절에도 활을 잘쏘고 술과 노래, 춤을 즐기는 성품을 가졌음을 동이전에는 전하고 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