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벌써 한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해야하는 우리네 인생에서 시간 만큼 야속하게 지나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신은 누구에게나 시간을 공평하게 주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시간의 체감은 크게 엇갈리고 있으니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은 고장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삶에 대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므로 특별히 나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떤  분에서 어떤 역할과 임무를 띠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시간 개념은 크게 달라지게 되어있다.

 영화 '벤허'에서 노예의 몸이 된 주인공은 자유인의 시간보다 몇 백배 나 더 고통스럽고 불행하다고 호소한다. 즉, 너에게 있어서 하루는 나에게 있어 일년이 될 만큼 삶에 따라 시간의 해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존재해야 하므로 지나간 과거는 계속 쌓여가고 현재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의 시간은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맞이할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자리에서 "나에게 과거를 묻지마오"하고 괴로운 술잔을 기울이는가하면, 어떤 이는 "나는 좋은 추억이 있어요"하면서 즐거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지나간 날이 불행했다면 잊으려고 할것이고, 행복했다면 입담좋게 늘어놓으며 자랑할 것이다.

 시간에 대한 해석은 얼마나 살았나가 소중한 것이 아니고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에 비중을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남겨진 업적이 후세에 역사적 교훈이 될 때 그런분을 존경하게 된다. 문민통치자의 대표적 인물인 세종이나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개혁을 주장한 조광조의 삶은 위대한 시간을 소유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개혁의 과정에서 엄청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개혁에 자신이 없는 계층이나 신분은 스스로 사회전면에서 후퇴해야 한다. 한 시대의 주역이 영원한 주역이 될수는 없다. 변화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일어나도록 하기위해 작은 일부터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지도성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을 개혁하는 시기는 자주 오지 않는다. 한번 놓쳐버린 시간은 나의 손에서 떠나고 만다.

 특히 시간을 이끌어가는 사회 지도층에 있는 정치인은 국민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국민과 더 가까이 다가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설령 일부 계층이 협조하지 않아도 대화와 설득으로 난제를 풍어 나가야 하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세상만사가 마주쳐야 할 손바닥이 어긋나나면 삶이 답답하다. 성철 스님은 '견지망월(見指望月)' 이라는 말로 우매한 사람들을 일깨워 주었다.

 즉,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손가락은 수단이고 달은 목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수단에만 집착하는 것을 지적 한 말이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면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독일의 철학자도 이점을 염려하여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고 하였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가 경여이고 정치다. 시장 도지사 의원만이 정치를 하고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국민 나는 평백(평범한 백성) 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평백은 늘 허전하고 부족하여 무언가 채우려고 한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허전함을 많이 느끼며 살아간다. 이들은 부유층도 권력도 명예도 모른다. 오로지 편안한 삶을 원한다.평백은 분쟁을 싫어한다. 평백은 자신이 불리하다고 불공평하다고 여길 때 더 서러워 한다.

 평백에 주어지는 시간은 구속받지 않으려고 하고 부당한 처사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남명 선생은 일찍이 높은 학덕으로 조야에 명망이 두터워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권유받고 벼슬을 제수 했으나 거절하였다. 평백인 처사(處士)가 자유롭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제자중에 뜻이 반듯하면 관직에 나가기를 권하였다. 정치인은 평백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기에 평백의 신임을 잃지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백도 정치 지도자의 도움 없이는 미래가 없으므로 상생(相生)의 화합으로 새해에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도록 하자.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