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밥그릇에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 내 습관은 오래된 배경이 있다.

 가난하게 자란 때문인지 먹는 것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기도 하려니와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농사일을 거들면서 작물이란 것의 성장과정을 익히고 그 귀함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햅쌀밥, 그 밥알들이 얼마나 힘든 여정을 이겨냈는지를, 밥을 먹을 때마다 나는 생각하게 된다.
 
 논을 고르고 모판을 만들어 볍씨를 뿌리면서 한 톨 벼의 역사는 시작된다. 모내기를 하고 난 뒤부터는 오직 벼한테 제 일생이 달렸다. 온정 가득한 농부의 손길을 받기도 하지만 벼는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 가뭄이든 태풍이든 주어진 조건을 꿋꿋이 이겨내야 한다. 쭉정이가 아니고 알알이 맺은 벼의 경우는 여간 행운이 아닌 것이다. 드디어 추수에 이르니 그 경로까지 벼가 이겨낸 일들은 중요한 업적이 된다. 그렇다고 안심하지 못한다. 추수 할 때 자칫하면 논바닥에 떨어져 거름으로 썩어지거나 혹은 도정 과정 중에 겨 속에 떨어져 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다행스럽게 쌀자루에 들어 정량에 포함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행운인 것이다. 밥솥에서 밥으로 만들어져 밥그릇에 담기기까지 천신만고 끝에 하필이면 밥주걱에 붙어서 설거지 찌꺼기로 전락하는 그런 경우는 최악이다. 밥숟가락에서 입 속으로 드시니 드디어 밥알 하나 밥답게 마침내 제구실 했다.
 
 밥 한 톨, 그 여정을 생각하면서 감사히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 것은 볍씨의 긴 여정을 먹는 것이다. 그가 삼킨 땅의 양분들, 공기, 바람, 햇볕, 비, 태풍을 먹는 일, 농부의 정성과 꿈과 사랑을 먹는 일이다. 밥 먹은 숫자를 세어 보지 않았지만 나는 올해 무수히 밥 한 톨들을 삼켰다. 그것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생각이란 것의 에너지를 구했다. 올 한 해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거뜬히 소화시킬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된 한 해란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텅 빈 들판에 가지런한 그루터기 행렬은 한 해를 살아낸 영광의 길 같다. 아피아 가도만큼 위대한 대로이다. 쏜득쏜득 솟은 챔피언의 위용은 몹시도 초췌하고 허전해 보이지만 그것을 보노라니 문득 쌀이 가득 찬 우리 집 쌀자루가 연상되었다.

 벼 그루터기가 우리네 부모님처럼 숭고해 보였다. 대대로 그루터기 돼 주신 덕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 다행스러운 순간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에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저 그루터기같이 꿋꿋한 뒤태를 가졌는지를 스스로 질문해 본다. 아마 나처럼, 아니, 나와 달리 위대한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그루터기 같은 우리네 부모님들께서 일구신 업적들, 인내와 사랑을 길러 주신 정을 향한 경외심이 우러난다.

 온 논을 채우는 일도 볍씨 하나로부터 비롯됐음에 겨울 논에 그루터기는 나더러 겨울이니 비워 보라 말하는 것 같다. 한 해 동안 내 속에 채워진 것들 중에 하찮은 것들이 더 많다 일깨워 준다. 

 그 어느 적 보석같이 반짝거렸던,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살아내는 동안 얼마나 힘든 여정을 꿋꿋이 견뎠고 여전히 이겨내고 있는지를 체험하고 있는 성실한 아가님들에게 2018년 한 해 참으로 수고 하셨다고, 잘 사셨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 빛나는 삶도 칭찬하고 싶다. 그들의 오늘이 우리로부터 비롯되기에 모내기 한 뒤 벼를 돌보는 농부처럼 우리는 우리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볍씨같이, 더하여 그들이 튼실한 볍씨 되도록 오롯이 정성을 쏟아야 하니 일찌감치 새봄을 준비하자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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