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번째 도서 /  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9p / 1만 1천 700원

 

추천 / 정다운 칠암도서관 사서

 △사서의 추천이유
가족, 친구 등 일상에서 맺고 지내는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사소한 일로 어긋나 오해가 쌓이고 관계가 멀어져 본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사소하게 생긴 균열, 틈이 점점 커져 상대방과 나 사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더 이상 메우는 것이 힘들어질 때,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경계를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편혜영 작가의 '홀'은 그런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경험해 봤지만 명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는 관계 균열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이 2017년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을 했다.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한 심리묘사, 때로는 오싹한 기분이 들게 하는 편혜영의 문체를 좋아하는 마니아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셜리 잭슨은 미국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고딕 미스터리의 대가이다.우리나라에는 '제비뽑기' '힐 하우스의 유령' 등의 작품이 출간돼 있다. 스티븐 킹은 '힐 하우스의 유령'을 지난 백 년간 등장한 초자연적 소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았으며,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샤이닝'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  
편혜영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셜리 잭슨의 문학적 성취를 이어가기 위해 2007년 설립됐다. 후보작은 심리 서스펜스, 다크 판타지, 호러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역대 수상작으로는 2015년 스티븐 킹의 '악몽을 파는 가게', 2016년 에마 클라인의 '더 걸스' 등이 있다. 이쯤 소개하면 편혜영의 '홀'이 어떤 소설인지 대충은 짐작할 것이다.
'홀'은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후 장편으로 개작하며 완성된 작품이다. '식물 애호'는 미국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게재되어 현지 독자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고, '홀'은 그 이후 미국에서 다시 출간됐다.
'홀'은 느닷없는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완전히 달라진 오기의 삶을 그린다. 사십대 대학 교수 오기는 심각한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교통사고는 오기의 신체와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벌어지는 일들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 교차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오기의 삶은 한 꺼풀씩 벗겨진다. 독자들은 오기가 만들어온 그의 삶을 관찰할 수 있고 이미 뚫려 있던 삶의 구멍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엄청난 사고는 한순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결정들이 제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린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오기의 삶을 큰 줄기로 삼으면서 장면 사이사이에 내면 심리의 층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한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일면이 치밀하고 팽팽한 긴장으로 드러난다.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혜영의 특유의 문장이 가슴을 파고든다. 오기의 눈으로만 보이는 삶의 구멍, 그래서 더 오싹하다.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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