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8>

 

국경선의 모퉁이

 국경선의 모퉁이 / 류현옥 지음 / 전망 / 309p / 1만 3천 원

 

 초등학교 때의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2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의 일기장 6권을 굵은 끈으로 묶은 것이다. 일기장 안에는 친구의 이름과 함께 했던 놀이가 있고, 옆집 언니를 따라 산에 올라가 봄나물을 뜯어 온 풍경이 있고, 우리 동네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했던 오빠가 있다. 나를 가득 채웠고, 현재의 나를 만들었던 그 모든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무사히 행복한 것일까.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이름조차 희미해져버린 그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만약 이 땅을 떠나 먼 타국에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멀리 떠나 살아본 적이 나로서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고향 김해를 떠나 독일에서 살고 있는 류현옥 씨의 산문집들에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1960년대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 감소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 부족사태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독일인들이 기피하는 간호 인력이 부족했다. 우리나라는 해외인력수출의 일환으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독일에 1만 명이 넘는 간호사를 보냈다. 류현옥 씨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첫 번째 산문집 '베를린의 하늘'을 펴냈던 2013년, 김해시청 근처 찻집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외동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문화 류씨 집성촌인 우리 마을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어요. 집 뒤 동산에서 놀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합성초등학교와 김해여중을 다녔죠.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가장 친한 친구 3명이 김해에 살고 있고, 가족도 김해에 있습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김해가 참 많이 변했어요. 발전도 많이 했지만,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많이 잃어버리기도 한 것 같아요."

 그의 말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는 마산간호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70년 9월에 독일로 떠났다. 40년 넘게 독일에서 살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모국어로 글을 썼다.

 2010년 해외동포문학상을 수상했고, 월간 '에세이'의 '에세이스트' 신인상을 수상했다. '베를린한인일보', '재독교포신문', '재독우리신문', '호스피스신문', '재독문인회지' 등 독일 현지에서도 활발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산문집 '베를린의 하늘', '스판다우의 자작나무', '국경선의 모퉁이'를 냈다. 세 권의 책에서는 고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독일의 풍경,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사색이 어우러진다.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생생한 고향의 기억은 김해 사람들에게도 그리운 한 모습일 것이다. '국경선의 모퉁이'에 실린 글 '종자 고구마'의 첫 시작을 소개한다.

 "내가 태어나 유년기를 지낸 외동 마을은 김해군과 주촌면의 경계선인 선지고개 아래에 있다. 고구마 농사를 주로 했기에 흔히 '물고구마 외동'으로 통했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다른 동네 아이들과 싸울 때면 '외동 물고구마'로 놀림을 받았다. 우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별명이었다."

 이 대목에서,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이 떠올랐다. 먼 독일에서 글을 쓰면서 고국에서 책을 내는 그는 나의 초등학교 선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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