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 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칠산 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아미타불은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잘 알려진 부처님으로서 종교를 불문하고 우리 정서 속에 친숙하고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은 귀에 익은 단어입니다.

 이는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이기 때문에 그 아미타부처님에게 귀의한다는 주문입니다. 그 아미타부처님이 성불하기 전 법장보살이었을 때, 일체중생을 제도하려는 보살정신으로 48가지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 중 24번째 서원이 공구여의원(供具如意願)입니다. 법장보살은  "저는 부처가 되려고 하지만, 그 나라의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는 공덕을 세우려 할 때, 그들이 바라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라고 서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구여의원은 아주 작은 공양물일지라도 부처님께 공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중생들을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공덕을 세우려 할 때, 그들이 공양하고자 하는 모든 물건들을 바라는 대로 얻게 해달라는 발원입니다.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면 될 때까지 성불하기를 거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진짜 속뜻은 따로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자꾸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기가 갖는 열등감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키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 모두를 다스리도록 중생들 제도해서 극락으로 인도하겠다는 큰 서원인 것입니다. 

 공구(供具)라는 것은 이미 갖추어져 있음에도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기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행복은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데도 이를 모르고 그저 많이 벌어서 몸뚱이 하나 윤택하고 편하게 사는 것만이 행복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산이 없음에 부모를 비난하고, 넓은 아파트를 차지하고도 만족스런 수입이 없음에 부부간에 갈등하며, 남을 밟고서라도 더 많은 부자가 되라고 자식을 채찍질 합니다.
  
 불교는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욕망을 다스리고 자제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물질만능주의 습성에 젖은 현대인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쫓는 것들이 바로 오욕(五欲)이기 때문입니다.

 오욕은 물질(色)에 현혹된 재물욕, 듣기 좋은 소리(聲)에 미혹한 명예욕, 향기로움(香)과 달콤한 맛(味)에 탐착하는 음식욕, 야릇한 촉감(觸)에 빠지는 성욕, 게으름에 늘어진 수면욕을 말합니다.

 이 모두가 배부른 자들의 탐욕입니다. 배부른 자, 욕망을 쫓는 자에게서는 진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설령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우린다 하여도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복이라는 욕망의 해결사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는 좀 더 많은 것을 얻은 후에 베풀겠다며 온통 채워질 수 없는 오욕에만 매달립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은 바로 이점을 소홀히 하지 않고 깊은 고뇌 끝에 큰 서원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공구의 대상물은 의복, 음식, 침구, 의약 등의 네 가지를 말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사사(四事)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물건은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최소의 조건이며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입니다. 그래서 사사공양(四事供養)하는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며, 불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생을 위하고, 극락을 바라며, 미래의 부처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현실 가운데서 생명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진실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 세운 아미타불의 서원입니다. 그래서 아미타 부처님에게 귀의하면서, 가난하고 굶주린 생명에게 사사공양을 베푸는 것이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는 불자의 참다운 실천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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