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독서사

대한민국 독서사

대한민국 독서사 /
천정환·정종현 지음 / 서해문집 / 336p / 1만 7천 원

 

 

 어렸을 때 책을 무척 좋아했다. 합성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하듯 '도서실'이 생겼다. 집에 있는 책은 더 읽을 게 없어서 어른들이 보는 책까지 욕심내다가 혼나기도 했고, 계몽사 아동문학전집이 있는 친구 집에서 눈치 보며 책을 읽던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실은 나에게 오아시스였고, 보물창고였고, 궁전이었다. 책이 귀한 시절이어서 도서실은 요일과 시간을 정해 열렸다. 그때마다 애가 타서 아예 도서실부원을 자원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첫 책읽기는 김해에서 그렇게 시작됐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김해의 독서문화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김해곳곳의 작은 도서관들을 보았을 때 '책이 고파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내 유년시절의 허기가 떠올랐고, 현재의 김해 아이들이 부러웠다. 김해에서 열리는 청소년 인문학 읽기 대회를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전국에서 찾아온 고등학생들도 김해를 부러워하는 걸 현장취재에서 듣기도 했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김해에서는 '2018 김해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렸다. 국내 최대의 독서 문화축제로 올해가 5회째이다. 축제 기간 동안 책을 좋아하는 김해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책의 도시 김해가 또 하나의 책 이야기를 축적했다.

 우리나라의 독서문화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들려주는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과 김해의 현실들이 생각났다. '대한민국 독서사'이다. 이 책은 해방 이후 지난 70년간의 한국 현대 독서문화사이다. 책 읽기 문화를 통해 돌아본 우리의 '知의 현대사'이자 상식과 교양의 역사, 대중문화사, 냉전문화, 문화제도사까지 아우르는 인문교양서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옆에는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난 70년간 우리 국민들이 가장 사랑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얽힌 일화이다. 바람난 대학교수  부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퇴폐적 서구 사조를 묘사하면서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연재 중이던 '서울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954년 단행본이 나왔을 때 수십만 권이 팔렸다.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는 신문을 통해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대학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는다며, '자유부인'을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 비난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폭발했다. 1956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논란이 됐다. 문교부가 영화에서 키스 및 포옹 장면의 필름을 약 100피트나 잘라냈다. 그 바람에, '자유부인'은 표현의 자유 논쟁을 야기하고 대중의 관심을 더 크게 만들었다.

 책 한 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이런 일들은 우리가 걸어온 모든 역사를 한 번에 보여준다. 다른 책에도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읽어왔는가는 어떤 역사를 걸어왔는가와 같은 말이다. 70년간의 독서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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