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책방] 아버지의 구두

아버지의 구두

 

양민주 지음 / 산지니 / 240p / 1만 5천 원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른이 되고 나서 추석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연휴 말고는 별다른 즐거움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은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김해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명절은 마을의 넓은 공터였던 타작마당에서 시작됐다. 아이들과 함께 타작마당에서 살구받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면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동무삼아 장에 갔던 어머니들이 돌아오면 우루루 뛰어갔다. "내 새 옷 샀어?" 그때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추석 전날이면 집집마다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아이들은 갓 쪄낸 송편이며, 부침개를 몰래 들고 나오기도 했다.
 
 명절이면 말끔한 양복을 입은 아버지 모습도 기억에 선명하다. 큰집에 가면 아버지와 닮은 모습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계셨다. 세 분이 거의 같은 모습이라 어린 마음에 신기하기도 했고, 또 좋았다. 이제는 그 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남동생의 얼굴에서, 사촌들의 얼굴에서 나는 여전히 그분들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였을까. 추석을 앞두고 양민주 시인의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가 생각났다. 2006년 <시와 수필>로 등단한 양민주 시인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틈틈이 써온 수필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그의 시집  '아버지의 늪'과 함께 읽으면 감동이 배가 된다.

 우리 민족의 삶에서 가족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가부장 사회였기에 아버지의 존재는 때로 권위적이고 위압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구두'에서는 조금 다른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물려받은 약간의 전답에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는 가족을 가난으로부터 구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남에게 얻은 커다란 구두를 신고 다녔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어머니의 간호를 받으시며 새로 산 신발을 신어보지도 못한 채 한 달을 누워만 계시다 고이 눈을 감으셨다. (중략) 아버지의 삶을 기록할 수 없었던 새 구두는 아버지의 몸무게나 제대로 읽었을까?" 책 속 산문 '아버지의 구두'의 한 대목이다. 이 글 곁에는 묵화 그림 하나가 놓여 있다. 댓돌 위에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는 그림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다.

 이 책의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가 바로 김해의 서예가 범지 박정식의 그림이다. 1994년 범지 박정식은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최연소 수상자로 당시 서예계를 놀라게 한 일화를 가진 그가 이 책에 아름다운 그림을 실었다. 글과 조화롭게 실린 그림은 글의 깊은 멋을 살려, 읽는 이의 즐거움을 더한다.

 세 누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양민주 시인은 나이가 든 누나들을 만났을 때의 마음을 담은 글도 썼다. "누나들이 이젠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주름이 생겼으며 말씀도 얌전스럽다. 세월 앞에 순응해버린 누나는 이젠 누님으로 불러야겠다."

 책 속 가족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을 읽으면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생각난다. 명절의 의미가 갈수록 희박해져 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켜가고자 하는 것은 왜일까.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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