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일본으로 윤동주 시인 문학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를 찾아갔다. 형무소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불볕더위만큼이나 시인을 기리는 일행들의 마음도 뜨거웠다. 후쿠오카에서 1995년부터 활동해 오고 있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회원들을 만났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부, 교사 등 일본의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 윤동주 시를 읽으며 토론하고 감상하는 모임이다. 후쿠오카현의 시민문화센터에서 그들과 함께 문학세미나를 가졌는데, 한 일본인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를 숙연하
지난해에 한국 청년 두 명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아픔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서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해변에서 뉴욕까지, 70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6600km를 달린 일이 있었다. 백현재, 이호준 두 청년의 이야기를 자전거 동호회 웹사이트에서 접한 30대 미국 고교 교사 안토니우 나바로 씨도 시카고부터 합류해서 함께 달렸다. 두 청년은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들에게 할머니들의 피해사실을 설명했고, 청년들을 만난 미국인들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를 넘어 전 세계 여성의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에 대한 기사,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아무 일이 없이 지내는 중에도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만사 제쳐놓는 판인데, 요즘 일본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분기탱천할 지경이다. 분한 걸로 치자면 온 마음을 다해도 끝이 없고, 되갚아주자고 치면 온 몸을 다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지난 역사의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은 채 억지를 부리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같은 사피엔스 종의 인간으로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고 치밀하게 일본을 대해야 한다. 그런
하루 종일 더위와 일에 지쳐 있다가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여름 저녁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맥주는 전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맥주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 한 권을 소개한다. 맥주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있는 법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 맥주에 관한 법조항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 108조에는 “술집 주인이 맥줏값으로 곡물 대신 더 많은 무게의 은을 받거나, 곡물 가치에 비해 적은 양의 맥주를 빚으면 잡아가 물에 던진다”고 적혀 있다. 그다음 조항인 109조에는 “자기 술집에 모여 음모를 꾸민 반
훌륭한 라이벌처럼 좋은 자극은 없다. 같은 분야에서 서로 맞수가 되어 경쟁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더 인정받고, 또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훌륭한 라이벌이란 그런 사람이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가로 활동하는 김재훈 씨가 순수예술, 대중문화, 클래식까지 망라해 20세기와 21세기 문화를 꽃피워낸 영웅들을 소개한다. 그 영웅들에게는 어떤 라이벌이 있었는지, 그들의 경쟁이 어떻게 찬란한 인류 문화를 꽃피웠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세기의 아이콘으로 보는 컬처 트렌드'이다. 책 표지가 아주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납량물들이 많이 나온다. 오싹한 이야기가 최고다. 드라큘라 이야기는 어떨까. 필자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더위를 쫓고 싶어서였다. 좀 서늘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몇 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이제는 여름만 되면 이 책이 생각난다. 으스스한 이야기려니 하고 읽었다가 그 쓸쓸한 아름다움에 푹 빠져 정말로 더위를 싹 잊어버렸던 책이다. 브램 스토커의 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드라큘라 영화의 원전이다. 스토커는 1847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공무원인 아버지와 복지사이자 작가인 어머니 사이
6·25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겼고,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도 모르고 이데올로기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던 이 땅의 백성들은 전쟁기간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 책은 전쟁 중에 우리나라 화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또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소개한 책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세상살이에 더 서툴렀던 예술가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6·25전쟁 당시 우리 화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리고 화가들이 기록한 6·25전쟁 당시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와 시집 '아버지의 늪'을 냈던 양민주 시인이 또 한 권의 수필집을 냈다. 이 책에는 두 개의 고향이 있다. 저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창녕과, 현재 살고 있는 김해이다. 저자와 같은 곳에서 태어나지도 살고 있지도 않지만 책을 읽는 동안 불쑥 고향이 떠오른다. 그럭저럭 살아오는 동안 저만치 밀쳐두었던 고향의 풍경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가 하면, 현재 살고 있는 곳의 이런저런 일들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림이 있다. 저자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 시대가 아무리 어수선해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기대와 희망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이 책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장면이었던 전태일 열사의 누이, 전순옥이 만난 우리 시대의 장인들의 이야기다. 소공인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그 기술로 우리나라의 1970~8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가 철 지난 사양산업이라며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도 그들은 의류봉제를
처음 텔레비전이 집에 들어오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텔레비전은 문이 달린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 문은 작은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었다. 열쇠는 부모님이 가지고 있었다. 텔레비전 방영이 시작되는 시간이면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가 텔레비전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다. 그 문이 열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흑백 텔레비전으로 방송을 보던 그 시절, 아직 기억한다. 책 제목이 말해주는 그 신기한 세상은 여전히 '테레비'라고 불러야할 것 같다. 대한민국 방송역사에서 흑백 텔레비전 시대는 1980
1889년 4월 16일, 런던 빈민가에서 찰스 스펜서 채플린이 태어났다. 그리고 나흘 뒤에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났다. 채플린은 5살 때 어머니 대신 뮤직홀 무대에 섰다. 그때부터 무대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은 채플린은 18살 때 당시 영국 뮤직홀 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카노 극단과 계약을 맺고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다. 싸움을 좋아하던 골목대장 히틀러는 화가를 꿈꿨다. '그림에 자신있다'고 늘 자신만만했지만 18살에 응시한 빈 조형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2년 연속 낙방한다. 히틀러는 빈에 머
결론부터 말하자.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행복한 나라이다. 소설가 한창훈의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한 섬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섬에서 빈부귀천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말조차 알 필요 없이, 순리대로 살아간다. 176페이지의 작은 책이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완성됐다. 단단하고. 큰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런 섬이 실제로 있다. 남대서양에 있는 화산섬 ‘트리스탄 다 쿠냐’. 한창훈은 오래전, 20대 후반에 이
△"파시스트 독재자께서 어느 날 언론사 취재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들이 모두 모였다. 무솔리니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까치발로 무솔리니의 등 뒤로 걸어가 그가 그렇게 관심을 두고 있는 책이 뭔지 확인해봤다. 위아래가 뒤집힌 영불(英佛) 사전이었다." 헤밍웨이가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무솔리니를 취재했을 때의 기사이다. '토론토 데일리 스타' 신문, 1923년 1월 27일에 실렸다. 뒤집힌 책을 읽는, 아니 기자들 앞에서 보란 듯이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던 무솔리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쓴 짧은 기
요즘은 음악을 다양한 매체, 기계로 접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어도 편하게 어디서든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한 세대 전만 해도, 라디오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매체였다. 음반을 사지 않아도, 녹음기나 전축이 없어도 라디오만 있으면 음악이 나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요즘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아져서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 시절, 마치 내 심정을 모두 알아주는 듯한 노래와 팝송을 소개하는 DJ의 한마디에 울고 웃었던 시대가 있었다. 예쁜 글씨로 사연을 쓰고 알록달록 꾸
5월이다. 가장 먼저 맞는 즐거운 날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이 되면 소파 방정환과 함께 권정생 선생도 생각난다. 이 분들처럼 어린이를 사랑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 의미도 권전생 선생 전기를 소개한다. 몇 년 전 어느 독서통계 조사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권정생 선생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싫어하는 작가도 권정생이라는 결과도 있었다. 싫어하는 작가에 권정생 선생 이름이 오르다니 어찌된 일일까. 어린이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한 편 이해가 된다. "권정생 작가가 누구에요? 왜 어른들은 자꾸만 이 작가 책을
이 코너를 통해 소개했던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이 있다. 전남 순천에서 살고 계시는 할머니 스무 분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다. 그 책 소개가 나간 뒤 김해에서 두어 통의 전화가 왔다. 할머니들이 직접 글을 쓴 것인가, 혹시 할머니들이 구술할 때 받아쓴 것이 아닌가, 어르신들이 글을 쓰게 하고 모을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면 좋을까 등.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해에서도 곧 어르신들의 삶을 담은 책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 어르신들의 삶을 담은 책을 구상하는 분들께
자신에게 미루는 습관 따위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매번 정해진 시간에 '그것'을 완성해서 넘겨주어야 하겠지만, 그 직전까지는 최대한 미루는 것,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미루기라면 자신 있다. 적지 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보았다. 대놓고 '미루기의 천재들'이라니. 천재들도 미루는 습관이 있다는데,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이야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조금은 안심도 된다. 이 책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이 땅에 괴물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깜짝 놀라 주목했던 책이다. 저자 곽재식은 괴물을 알고 싶어하고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TV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본격적으로 SF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말고도 ,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재미난 활동은 2007년부터 한국의 옛 기록에 등장하는 괴물 이야기를 정리해온 것이다. 그의 블로그 '괴물 백과사전'은 온라인 괴물 소굴이다
때로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 온 가족이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머리를 맞대고 먹었던 음식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년 전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김해에 있는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이 "논고동찜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 중에서도 논고동찜이 가장 그리웠던 것이다. 타향이라고 말하기에도 벅찬 대도시 서울에서는 그 음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논고동찜은 배고픈 허기 뿐 아니라 정신의 허기까지도 채
처음 영화관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밤길을 걸어 극장에 들어섰다. 그 극장이 김해극장이었는지 금보극장이었는지, 무슨 영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두운 극장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엄청나게 큰 화면이 눈앞으로 와락 달려들 듯 펼쳐지던 그 순간만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극장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로봇 태권브이'를 보면서 극장이 떠나가라 친구들과 주제가를 따라 부르던 기억, 반공영화인지 새마을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인지를 단체로 보고 감상문을 쓴 기억도 있다. 세상이 변해 볼거리가 지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