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승 마조는 당나라시대 육조 혜능의 제자인 남악 회양선사로부터 법을 전수 받았습니다. 육조란 달마대사의 여섯 번째 법통을 이은 제자라는 의미이며 혜능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시조입니다. 그리고 마조는 그 혜능의 손제자 뻘이 됩니다. 마조는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제자들과 제접을 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많은 화두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마조어록'에는 천금과 같은 선문답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 선문답 중 하나입니다. 「마조가 하도 좌선을 많이 하여 그 모습이 마치 나무 등걸 같았다. 그러나 회양선사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느냐?"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너는 아직 도(道)를 모른다." 부처님께서는 또 물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너도 아직 도를 모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느냐?"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렇다. 너는 도(道)를 아는구나." 사십이장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숨 한번 쉬는 극히 짧은 시간을 우리는 순식간이라고
불교를 두고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도 선언'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처음 법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얼마 가지 않아 승단에 60명의 제자가 형성되었을 때 선포한 것입니다. 에 언급된 '전도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서 한길로 가지 마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튀는 제자로서 '자로'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 때 겉 치례를 싫어하는 야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자로는 공자에게 이렇게 깐죽거립니다. "화살을 만드는 산죽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바르게 자라고, 그것을 잘라서 화살을 만들면 잘도 꽂힙니다. 그런데 골치 아프게 공부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는 "그 화살 역시 뒤에 깃털을 꽂으면 더 힘 있게 날아갈 것이고, 앞에 화살촉을 박으면 더 깊이 꽂힐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원을 꿰뚫을 수 있는 배움의 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현대사회의 문명을 이끌고 가고 있는 미국 실리콘 밸리의 불이 꺼지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인도의 실리콘밸리에 환한 불이 이어져 밝혀집니다. 인도의 휴양도시였던 벵갈루루는 1985년 반도체를 생산하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이곳에 연구소를 설립한 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는 1천600개가 넘는 정보·통신 업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최근에는 산업의 중심이 자동 제어, 칩 설계, 통신 소프트웨어, 금융 등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어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지로 선호되는 지역입니다. 인도의 풍부한 기술인력 인프라도 돋보이는데, 이
평등이란 말은 본래 불교에서 현상계의 모든 사물의 6가지 구성원리 중 하나인 ‘사마냐(samanya)’라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법의 평등한 진리를 깨달아 아는 이(사람)’라는 뜻을 나타내므로 부처님을 평등각(平等覺)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불교의 평등이라는 말은 ‘만법의 근본이나 세상 모든 만물의 본성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평등이라는 자비관으로서 당시 4가지 계급으로 구분한 카스트제도를 보았을 때, 이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을 것입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놀이문화에는 화투가 단연 손꼽힙니다. 산이나 들, 어느 장소든 몇 사람만 모이면 고스톱 판이 자연스레 벌어집니다. 화투의 구성은 48장으로 4장씩 12달을 상징합니다. 꽃과 풍광을 중심으로 12달로 나누어 광 또는 10끗짜리 그리고 5끗짜리와 껍데기로 이뤄집니다. 화투는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이 있지만 예전에는 주로 월별로 그림을 맞추는 민화투가 대세였습니다. 민화투는 패를 나누고 시작하여 더 이상 패가 남지 않으면 각자 획득한 끗수를 계산하여 많이 딴 쪽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때 광은 1장 당 20점,
흔들림이 없는 삶에 대하여 성경은 베드로 사도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1:1-11)."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품으신 그 뜻을 내가 분명히 안다면, 나는 후회 없이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에서는 이를 콕 짚어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법실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청정도론 제3권 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학습하지 않은 색다른 환경과 맞닥트리면 몹시 당황해하며 지레 겁부터 먹게 됩니다. 익숙하지 않은 낮선 환경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도 익숙하지 않으면 이를 적극 배척하려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입사 지원자들은 면접에서 익숙함을 공유하고자 모범 답안을 만들어 다른 지원자와 눈높이를 같이 하려고 애씁니다. 이는 외부의 기준을 좇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그 외부의 기준은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휩쓸려 다니며 만들어낸 하
부처님의 제자 가섭과 아난은 매일 아침 탁발(걸식)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가섭은 가난한 집을 주로 택했으나 아난은 항상 마을의 중심부인 상가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아난은 가섭이 굳이 가난한 집만을 고집하는데 의문을 품고, "가섭존자님, 왜 가난한 집만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입니까?" 그러자 가섭은 "아난존자님,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과거에 남을 위하여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미래에는 행복해지라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난에게, "아난존자님은
불교의 경전인 법화경은 일월등명부처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일월등명부처님은 글자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빛의 부처님입니다. 대승경전을 대표하는 법화경이 일원등명부처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빛에서 모든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무명이라는 어둠을 깨트리는 빛인 것입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밀려나고, 빛이 없으면 어둠만 남게 됩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탐·진·치 삼독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빛이 비추어지면 탐욕심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빛이
법구경에 '擊人得擊 行怨得怨 罵人得罵 施怒得怒 (격인득격 행원득원 매인득매 시노득노)'란 사구게가 소개됩니다. 그 뜻은 "남을 때리면 남도 나를 때리고, 남을 원망하면 남도 나를 원망하고, 남을 욕하면 남도 나를 욕하고, 남에게 성내면 남도 나에게 성을 낸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거울과도 같으며, 거울 속에 상은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며 성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비와 사
법구경 악행품 6장에는 '정상견화 기선미숙 지기선숙 필수기복(貞祥見禍 其善未熟 至其善熟 必受其福)'이라는 시구가 실려 있습니다. 이 뜻은 "그 선이 아직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를 당한다. 그러나 그 선이 익게 될 때에는 반드시 그 복을 받을 것이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베푼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칭송받는 일입니다. 서방세계에는 이를 긍휼이라는 단어로, 그리고 불가에서는 보시라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결국 그 의도는 같은 것입니다. 법구경의 가르침과 같은 내용이 성경에도 담겨 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음력 7월이 되면 힘겨웠던 무더위가 청량한 바람에 밀려나고, 맑고 푸르른 하늘이 그 높이를 갸름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집니다. 특히 어두운 밤이 되면 영롱한 북두칠성은 밤하늘의 한 쪽으로 몰아 떠있고 비단결 같은 은하수는 금방 쏟아질 것 같이 아름다워집니다. 그 동쪽에는 직녀성이 수줍은 듯 희미하게 비치고 있고 서쪽에는 견우성이 휘황하게 빛을 발하는데, 이는 마치 서로 마주보며 그리워하는 애틋함을 느끼게 합니다. 중국의 두목지의 칠석시에 “요계야색양여수 와착견우직녀성(瑤階夜色凉如水 臥着牽牛織女星)”, “옥 섬돌에 밤빛이 서늘하기 물
달마대사는 "마음을 보면 부처요, 보지 못하면 중생이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 어느 곳에 부처가 있겠느냐?『혈맥론』”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의 몫이 있고 그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안으로 잘 살피어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이나 요행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청정한 마음은 일체의 선과 악도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 깨끗한 마음을 찾는 것이 바로 관심입니다. 악한 의지로 행동할 때는 마음이 어두워지지만 바른 의지로 살 때는 밝고 청정한 마음이 됩니다
진정한 뜻에 있어 인간회복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성철스님은 “타파경래(打破鏡來) 청천야수끽봉(靑天也須喫棒)“이라고 대답합니다. 이 문장을 해석해보면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푸른 하늘도 또한 몽둥이를 맞아야 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본디 선문답이 그러하듯이 쪼금은 생뚱맞지만, 인간은 본래 일체를 초월하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절대적 존재, 즉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고 나약한 중생으로 착각하여 중생이라 잘못 부르고, 중생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이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본래 부처인 인간면목을 확인하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기원전 약 563년부터 483년 사이에 인도 북동부 지역에 살았던 싯타르타 고타마 왕자의 출가와 깨달음, 그리고 그 사상의 전도와 포교에 의해 시작되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진화하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붓다'라고 부르며 붓다의 의미는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의 명칭입니다. 종교는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번개나 천둥 등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이 그 자연재해 뒤에 ‘무엇’이 있다고 여겼고, 그 ‘무엇’이 신으로 탈바꿈하면서 시작되었습
부처님은 행동철학으로서 세 가지 기준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평등의식, 목표설정 그리고 행동방식입니다. 그는 평등의식을 실천하고자 태자 출신이지만 자신만이 높고 귀하다거나, 또는 깨달은 사람으로 자신만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목표설정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 항시 진리를 구현하고 복을 짓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또한 평등과 목표에 걸 맞는 행동을 길들이기 위해 제자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새벽에 일어나 탁발을 하는 행동방식을 습관화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습관을 체화하여 부처님은 명행족이라는 명호를 얻게 되신 것
“전투는 지더라도 전쟁은 이긴다.” 이 말은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경영전략입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미국의 자동차시장은 오랜 동안 축적된 생산기술을 자랑하면서 평균 5000cc 이상의 대형차 시장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를 휩쓴 석유파동과 캘리포니아 주법(州法)으로 발동시킨 스모그 컨트롤 법안은 더 이상 미국 소비자로부터 대형차에 대한 매력을 상실하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생산시설의 변경에 대한 부담과 자동차 생산기술에 대한 오만함으
열반(涅槃)에 들기 전 부처님은 제자 아난다에게 말했습니다. “아난다야, 너 스스로를 너의 섬으로 삼고, 또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을 너의 의지처로 삼아서 살아라.” 이 말은 부처님의 유언으로서, 세상 그 무엇도 믿지 말고 오직 자신만을 의지하라는 냉정한 가르침입니다. 심지어는 부처님조차 믿지 말라는 엄청난 화두를 던지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외면하고 만일 자신의 주인을 또 다른 성현이나 신을 두고 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아마 그 성현이나 신의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원수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현이나 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