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489p / 2만 2천 원 TV사극이나 영화에서 재현한 과거를 치르는 장면을 보면 선비들이 큰 종이 위에 붓글씨로 답을 써 내려간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논술시험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비교하기에는 과거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달달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었을 테고, 문장은 물론이며, 글씨도 잘 써야 하지 않았겠는가. ‘책문’은 말 그대로 대책을 묻고 답하는 것이다. ‘책문’은 조선시대 고급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최종합격자 33명의 등수를
엄마 반성문 / 이유남 지음 / 덴스토리 / 312p / 1만 4천 원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런 말이 있겠는가. 그런데 잘 키우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식에게 큰 부담을 지울 때도 있다. 공부 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만 받던 자식이 하루아침에 ‘잘난 자식’의 역할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부모의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그랬다. 저자는 능력이 뛰어난 교사로 인정받았던 초등학교 교장이다. 자신의 교육방식대로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생각했다. 1등 교사, 1등
중화미각 / 김민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320p / 2만 원 김해에서 유년을 보냈던 필자는 합성초등학교 옆에 있던 중국집에서 처음 짜장면을 먹었다. 그 중국집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안타깝다.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미각의 충격에 휩싸여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릇을 통째로 삼킬 기세로 입 주변에 짜장을 잔뜩 묻히며 먹었던 그때의 짜장면이 내가 만난 최초의 중국음식이었다. 물론 중국사람들이 보면, 그 짜장면을 중국음식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중화요리는
생일, 결혼, 입학과 졸업, 각종 기념일에 축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건 선물이다.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선물을 고를 때 고민은 많지만, 그만큼 또 행복하다. 받는 사람의 기쁜 표정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보다 선물을 고르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고들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물의 풍속도도 함께 바뀐다. 현금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선물하기’도 유행하고 있다. 이렇게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선물할까 하
김홍도는 생계를 위해서 도화서를 퇴근한 후 그림을 그려 광통교에 내다 팔았다. 신선도든 산수화든 주문을 거절하지 않았고, 사례도 주는 대로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광통교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김홍도의 눈길을 끌었다. 싱글벙글 웃는 사람, 낮술을 걸친 듯 불쾌한 사람, 호박엿을 손에 쥔 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아이…. 김홍도는 근엄하기만 한 조정 대신이나 관료들과는 달리 다양하고 생생한 평민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김홍도는 빨래터, 우물가, 대장간, 말 목장, 어촌 등을 두루 찾아
김해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 겨울 풍경 중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겨울이 되면 교실 안에 난로가 설치되고, 매일 아침 당번이 작게 뭉쳐진 조개탄을 양동이 가득 배급받아 왔다. 난로에 불을 피워서 배급받아 온 한 양동이의 조개탄을 아껴 가며 하루 종일 썼다. 그 당시의 겨울은 그렇게 추웠다. 우리는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을 얹어서 데웠다. 담임선생님이 난로 위에서 오전 내내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가 점심시간마다 우리의 도시락 뚜껑 위에 더운 물을 나누어 주던 기억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몇 달 전 가을, 가 2019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될 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마음이 아팠다. 언론마다 폐간 위기를 보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그런데 가 다시 기사회생했다. 다행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를 봤다. 잡지를 읽고 나서 주변사람들을 배려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게 내가 행복해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해인 수녀, 법정스님, 소설가 최인호의 글과 똑같은 무게로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지면에 배치돼 있었다. 유명인의 글이라고 대우해주고, 일반인들의 글이라고
불멸의 명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오리지널 공연이 월드투어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에서 2019년 12월 13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내년에는 서울, 대구에서도 공연되는데, 관객들의 예매율이 뜨겁다. 부산공연은 부산·경남 지역 관객들이 몰려 세 곳 중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뮤지컬의 원작인 소설 도 오랜 세월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868년에 태어나서 1927년에 세상을 떠난 가스통 르루는 당대 최고의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였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1900년대 초부터 장편소설
기차는 많은 사람과 물자를 빠른 시간에 이동시킨다. 어렸을 때 탄 기차와 비교해보면 요즘 기차의 속도는 말할 수 없이 빠르다. 철도가 놓이고 기차가 달리기 전의 세상은 어땠을까. 그 후에는 세상이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철도는 인류의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변혁을 재촉했다. 철도는 19세기 초부터 말에 이르는 한 세기 사이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태어난 땅에서 살면서 삶의 터전을 거의 벗어나지 않던 사람들이 철도가 놓인 뒤에는 단 며칠 만에 대륙을 횡단하게 됐다. 철도가 발달한 덕분에 대규모 제조업이 가능해졌고, 이에
한 세대전까지만 해도 많은 언니, 누나들이 가난한 집안 형편에 학업 대신 일터로 나갔다. 그들의 삶은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이다. 정찬일 씨의 책 가 그들의 삶을 전해준다. 책제목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순이’는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에 가장 많이 들어갔던 이름이다. 한자를 보면 ‘순할 순(順)’이다.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딸들의 이름에 ‘순’자를 붙였다. 그래서 순이는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지금도 여전히 농담처럼 쓰이고 있다. 이 책은 이 땅의 수많은 ‘순이’, 그중에
최근에 TV에서 인상적인 광고를 보았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고기가 익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한우 광고이다. 영상은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가는 장면뿐이다. 소리는 ‘지글지글’뿐이다. 짧은 광고가 끝날 때 회사 이름이 잠깐 보인다. 지극히 단순한 광고이다. 우리 한우의 우수성 홍보도 없고, 과장된 표정으로 고기를 먹는 연예인 모델도 없다. 그런데도 한순간 멍해질 정도로 강렬하게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잘 익은 고기 한 점 씹으면 입안 가득 퍼지던 육즙이 떠오르면서 허기가 진다. 고기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이후부터 축적 기록해 온 정보이다. 정보를 기록하는 매체가 책에서 디지털기기로 확장됐다. 그 정보들이 집중적으로 보관된 곳이 도서관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정보를 얻고 공유한다. 도서관에는 책(정보)과 사람이 있다. 그래서 도서관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이 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화재이자 손실을 입은 LA공공도서관의 참사를 추적한다. 도서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주는 책이다. 1986년 4월 29일 아침, LA공공도서관에서 화재경보가 울렸다. 낡은 경보 시스템 탓에 자주 화재경보가
멸종 위기. 무서운 말이다. 한 종의 생명이 완전히 끝난다는 것, 그 종의 모든 개체가 하나도 남지 않고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가. “이 동물은 지구상에 몇 마리 남지 않았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 동물을 바라보면 신기하기만 할까. 만약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신기하게 볼 수 있을까. 지구의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구상의 생명이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멸종해가고 있는 것이다. 100년 안에 지구 생물 가운데 절반이 멸종할지도 모른다. 환경 악화의 주범은 인간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아는 생물 중 절반이 멸종한 뒤
세상에 이보다 유명한 가족이 있을까. 미국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심슨 가족’은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가족이다. 이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노란 피부에 엄청나게 큰 눈, 이상한 머리모양을 한 등장인물 그림을 보면 ‘심슨이다!’하고 금방 알아차릴 정도이다. ‘심슨 가족’을 가족 중심 생활 에피소드를 다루는 코미디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웃음 뒤에 철학적인 사유가 깊이 깔려있다. 펜실베이니아 킹스칼리지의 철학 교수 윌리엄 어윈을 비롯해 여러 명의 학자들이 철학의 눈으로 읽는
1800년대 초, 영국의 귀족 토머스 브루스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해체했다. 해체한 뒤에는 200t에 달하는 대리석 조각을 당시 세계 최강이던 영국 해군 함정에 실어서 영국으로 당당하게(뻔뻔하게) 가져갔다. 문화재 해체 약탈 규모가 참으로 대담하고 크다. 이 경우는 문화재 약탈에 개인뿐 아니라 영국 정부의 영향력이 방대하게 작용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문화재 약탈과 반환 문제는 전 세계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익숙한 문화재 반환에 대한 일을 떠올려보자. 2011년, 145년 만에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에서 돌아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은 보는 사람들까지도 즐겁게 한다. 아이는 놀고 있을 때 가장 아이답고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방과 후 수업과 학원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놀 시간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업에 시달리는 동안 놀이는 점점 사라지고, 또 잊혀졌다. 부모에서 자녀로 형에서 아우로 이어지던 놀이, 친구에서 친구로 전해지던 놀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 재미난 방법이 보태지던 놀이의 맥이 끊겼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방식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몸으로 부딪히고, 땀을 흘리는 놀이는 아이들의 성
20개의 진주와 11개의 루비가 장식된 붉은 벨벳 목걸이.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보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 가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관심이 생길 것이다. 어떤 디자인일까, 얼마나 화려할까 궁금하다. 가장 궁금한 점은 바로 그 목걸이의 주인이다. 이 목걸이의 주인은 프랑스 왕 루이 11세의 애완견 그레이하운드였다. 반려동물을 위한 사업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호텔과 펜션, 미용실, 놀이터는 물론이고 장례식장도 있다.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사라지고, ‘반려’라는 단어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가족의 위치를 당당히 차지하는
“자전거에 견줄 만한 사회 혁명은 없다. 바퀴 위에 앉은 인간은 기존의 수많은 공정과 사회생활의 형태를 바꾸었다. 모든 미국인이 자전거를 타게 된 이후 마침내 만인 평등의 위대한 원칙이 실현되었다.” 1910년대 미국의 잡지 에 실린 기사이다. 기사의 배경은 세계적인 부호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었다. 자전거 마니아였던 록펠러.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였던 록펠러도 자신이 탄, 자전거의 페달을 다른 사람에게 밟으라고 시킬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출근하는 평범한 남자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레시피 대로 시간을 따지고 분량을 체크하며 정확하게 한다고 했는데, 어딘지 부족한 맛을 확인할 때가 더 많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요리는 감으로 한다는 할머니들의 책이 나왔다. 충청도 사투리로 요리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정확한 시간이나 분량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내내 군침이 돈다. 어떻게 만드는 걸까, 무슨 맛일까 상상하다 보면 이 음식들로 차려진 밥상을 받고 싶어진다. 밥상을 차려주는 할머니 손을 꼭 잡으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이 책은 한글학교에 다니
“배고픈 건 참아도 목마른 건 못 참아!” 제목 옆에 있는 부제목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타는 목마름’이라는 말이 있을까. 목이 마를 때 물 한잔 마시는 기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목마름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절박함일지도 모른다. 밥을 먹는 것보다 우리가 더 자주 하는 일이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다. 밥은 하루 세 번으로 족하지만, 물이든, 음료든 마시는 횟수는 훨씬 많다. 예전에는 물만 마셨겠지만 지금은 다양한 음료수가 넘쳐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