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중에 오랫동안 여운에 남은 시 한편을 소개하기로 한다.햇살 따스한 봄날이면총각 죽임 당했던 무덤 곁에박새 한 마리 찾아와서자유 민주 정의 외치며찌찌르르박새는 세 번씩 머리를 찧어서 울었다한바탕 소나기 뿌려놓고햇살이 달아오르면처녀죽음 했던 계곡에박새 한 마리 엎드려서진실 사랑 흠모 우짖으며찌찌르르박새는 세 번씩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울었다간혹 네 번 울 때는슬픔이 흘러서 이어진 흐느낌못 다한 그 꿈이 얼마나 컸기에이루지 못한 사랑이 얼마나 쌓였기에떠나지 못하고 붙박이가 되었나전원일 詩 '
아이들에게 학교는 천국이었다. 온갖 놀 거리와 친구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노는 것에 신이 났고 아슬아슬한 곡예와도 같은 장난을 쳐대기도 했었다. 선생님은 늘 혼내기에 바빴다. 장난치는 아이에게 꿀밤을 먹이기도 했지만 눈가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과도한 장난에 사고라도 날까봐 지켜보면서도 노는 모습이 귀여웠을 것이다. 오래 전의 기억이다. 딱히 놀이 기구나 장난감이 없던 시절에 학교 운동장의 낡은 놀이기구는 고장이 나 제 기능을 못해도 노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커녕 망가진 자체로 또 다른 놀이기
지난 11월 17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제 80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튿날 신문에는 "알고 계셨나요. 어제 순국선열의 날" 한 줄의 설명과 함께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자들에게 인사하는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이 기사처럼 국민들은 무심코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2020년은 또 다른 역사 4·19혁명이 60주년 되는 해다. 필자는 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으로 앞장섰다. 이 때 23명의 대학생들이 희생됐는데, 중앙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6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잊혀지는 열사들의 행적을
6. 남해 선구줄끗기 1) 유래 선구마을은 신라 신문왕 10년(서기690년)에 전야산군이 설치되면서 속현인 평산현에 속하였다. 앞으로는 수심이 깊은 포구이며 뒤로는 설흘산 봉수대가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 선구마을은 반농반촌으로 풍농과 풍어를 빌며 해난 사고를 방지하고 마을의 번영을 위하여 아랫당산과 윗당산에 당산제(영남·호남 지역에서 행해지는 마을제사)를 지냈다. 선구줄끗기는 이 당산제와 결합되어 전승되는 놀이로 그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당산제와의 깊은 연관성을 볼 때, 마을의 오랜 역사와 같은 맥락에서 그
지난 2월 중순 이후 김해를 들썩이게 한 역사적 인물로 조순남 선생을 꼽을 수 있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해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이 내방가사 '김승태 만세운동가'였고 그 저자가 조순남 선생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쓴 내방가사가 100년 동안 전승이 되어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역문화의 경사일진대 하물며 그 내용이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다니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지역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내방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라에서 독립유공자로 지정한 애국지사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들의 행적을 담고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감천리(감내) 일대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하는 줄다리기. 1983년 경상남도 시도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감내게줄다리기·감내끼줄땡기기라고도 한다. 경북 울진군 죽변리 후정, 강원도 춘성군 서면 방동리, 삼척군 도계면 원덕읍 등지에도 게줄다리기가 전승되고 있다. 2) 구성 및 내용 게줄다리기의 줄은 여느 줄다리기와는 달리 동그란 게[蟹]의 형태로 만든다. 반지처럼 둥근 줄 주위에 게의 발처럼 곁줄(젖줄)이 달려 있다. 곁줄을 목에 걸고 땅에 엎드려 기면서 일정한 시간 동안 줄을 끌어당겨서 끌어오는 쪽이 이
3. 삼척기줄다리기 1) 유래 기원은 조선 현종(顯宗)때 삼척부사(府使) 허목(許穆)이 이 지방에 많은 저수지(貯水地)를 만들면서 이와 같은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놀이방법은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부내면(府內面)과 산곡에 자리 잡고 있는 말곡면(末谷面)이 각기 기줄을 만들고 음력 정월대보름날 광장으로 나와 줄다리기를 하게 된다. 기줄다리기는 이기는 쪽에 풍년이 든다는 속신(俗信)도 있으나 그 보다는 실제로 진편에게 삼척읍성(三陟邑城)의 수리 또는 오십천변의 제방(堤防)이나 보(洑)의 수리 등 노역이 배당(配當)되기 때문에
최근에 김해에서는 의미 있는 여성행사가 있었다. ‘사단 법인 해피 맘 김해 서부 센터’의 개소식과 ‘민주당 김해을 여성위원회 발대식’이 그것이다. 사회단체로서 해피 맘 김해서부센터(센터장 양갑숙) 개소식도 민주당 김해을 여성위원회(위원장 주정영) 발대식도 여성이 주축이 된 행사였다. 행사는 성황을 이루었다. 평일 저녁에 개최한 지역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여성 위주의 행사라서 여성의 참석이 압도적이었다. 여성들에게는 그만큼 의미 있는 행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 위주의 행사임에도 불구하
이 놀이의 줄 모양은 용(龍)을 연상시키는바, 줄다리기를 하여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도 용을 제작하고 이를 당기는 행사를 펼침으로써 용신(龍神)이 감동하여 물을 풍부하게 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서 온 것이다. 동서 양편은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상징되며, 여성인 서부가 이겨야 농사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줄다리기 자체는 물론, 양편의 줄 고리에 비녀목을 박는 일 따위를 모두 성행위에 비기는 것도 모두 생산성과 관련이 깊다고 믿는 때문이며,해마다 3 ? 1절을 기념하기 위한 3·1문화행사의 한가지로 벌여온다. 영산줄다리기는
2.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줄다리기 유래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줄다리기는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길쌈이라고도 하며 대부분 정월대보름에 시행된다. 또한 동국세시기에서는 충청도 풍속에 횃불싸움이 있다. 또 편을 갈라 밧줄을 잡아당겨서 끌려가지 않은 쪽이 이기는 것으로 풍년을 점치는데, 옛날의 줄다리기인 설하희(挈河戱)와 같은 것이다. 경기의 풍속도 그러하며, 승려들도 이러한 놀이를 한다. 경상도 풍속에 갈전(葛戰)이 있다. 칡으로 밧줄을 만드는데 두께가 4-50줌은 된다. 편을 갈라 서로 당겨 승부를 결정하는
장유 쓰레기 소각장 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전 계획을 실천하라는 쪽에서는 요구를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끊임없는 일방적 요구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저들의 요구가 주민전체의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눈과 귀 다 막고 자신들의 요구만 되풀이해서는 원만한 해결이 어렵다. 요구가 지나칠 정도로 일방적일 경우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반면 행정당국에서는 애초 이전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설파하고 대안을 마련하여 주민 설득에 힘쓰고 있다. 보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로 조직을 갖추어서 주민들과 접촉을 했어
줄다리기의 기원(起源) 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한강이남 지역에서 줄다리기 행사가 많이 이루어졌고, 이는 점차 북쪽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동남아의 벼농사 지역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농경행사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동양의 줄다리기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성격이 강한 민속행사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오락적 기능보다는 행사를 통해 촌락의 단합을 강조하는 의례적 측면이 더 강한 놀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충남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전남 장흥 보름 줄다리기, 제주
줄다리기에 대한 소고(小考) 옛 부터 우리 민족이 즐겼던 대중적인 승부 오락의 하나로 크고 긴 동아줄을 만들어 편을 가르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고사를 드리며, 암줄과 수줄이 연결된 부분 앞에서 축문을 읽으며 사고 없이 행사가 진행되도록 기원하고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리면 양편은 서로 힘껏 줄을 잡아당긴다. 줄다리기는 전체의 힘이 한데 모아져야 하기 때문에, 편장(片將)이라 불리는 지휘자가 호흡을 맞추도록 기를 휘두르며 지휘하고 승부는 중앙선에서 줄이 어느 쪽으로 많이 이동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매체 환경의 변화가 다양한 정보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시대를 실감케 한다. 나아가 정보 차원을 넘어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갖가지 퍼포먼스까지 난무하다시피 한 시대를 살고 있다. 여기에는 진실에 입각한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특수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보도 있다. 특수집단의 정보에 매몰된 사람들이 객관적 입장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만 믿으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이면에는 선동이라는 목적이 숨어 있다. 선동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나치게 동화
2019년도 봄, 여름을 지나 어느새 가을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습니다.음악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무의식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계절과 사람들의 삶 희로애락과 함께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클래식이, 때로는 세미클래식이, 때로는 대중가요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다양한 음악의 장르가 투입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음악의 선호도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57년간 한결같이 눈을 뜨는 아침과 하루의 일상을 마감하는 저녁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 버튼을 누르는
우리 사회에 각인된 선입견들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혐오시설과 관련된 것들이 있다. 이른바 폐기물 처리라든지 오폐수처리라든지 하는 것들과 관련된 사업시설들이 그것이다. 김해에도 관련된 사업체들이 존재하거나 앞으로 존치를 앞두고 있는 시설들이 몇몇 있다. 이를 두고 지자체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이 이들 시설의 존치를 두고 불편해 하는 것은 그것에서 유발되는 환경오염, 그에 따른 건강 및 재산상의 침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른바 국민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정으로 주민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그림으로 된 아침인사가 참으로 다양하다. 그것도 유행이 지나버렸는지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지인부터 시작하여 친척들과 선후배, 모임에 이르는 분들의 소중한 메시지이다. 명절이거나 무슨 날 이기도한 때는 거의 폭발수준에 이르기도 하다. 그림 속에 글이 적혀있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나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인연', '멋진 주말 되세요',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기분 좋게 시작 하세요', '늘 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여름의 장유 대청계곡은 만원이었다. 틈틈이 내린 비로 계곡물은 충분했고 여름을 만끽하고자 계곡을 찾은 청소년들과 가족들이 타고 온 차들로 계곡 옆 도로도 가득 찼었다. 김해 장유는 자연계곡이 도시를 관통하고 있어 비교적 자연의 수혜를 받고 있는 도시에 속한다. 우거진 숲 속에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 장유다. 1910년을 전후해서 제작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를 보면 무계천(茂溪川)이 존재한다. 따라서 대청천의 이 즈음까지의 이름은 무계천이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선산 바로 아래 밭이 있다. 팔순 혼자 몸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이 너른 밭을 잡풀 하나 눈에 띄지 않게 살뜰히도 가꾸어 놓았다. 추수하는 나의 단 하루 노동은 그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부렸다 펴는 내 동작이 점점 느려지더니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엉거주춤 일어서서 손을 허리에 대고 천천히 쭉 펴본다. 밭을 빙 둘러보니 작업한 고랑보다 남은 고랑이 훨씬 더 많다. 에라, 좀 쉬고 보자. 엉덩이를 푹 담가 밭고랑에 퍼질러 앉아 땅콩 한 꼬투리를 땅바닥에 탁 놓고 보니 영락없이 바로 저 위 조부모님 쌍봉의
김해 장유의 만세운동은 애국지사 김종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종훤은 장유면 유하리 출신이다. 그는 당시의 촌에서는 보기 드문 엘리트였다. 독립운동가의 산실로 알려진 오산학교 출신이다.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이 세운 신식교육기관으로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학교다. 김종훤은 졸업 후 장유에서 신문의숙이라고 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종의 국상 소식과 함께 들려오는 수상한 낌새에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상경한다. 상경하여 그가 목도한 것은 3.1만세운동이었다.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겨서 하향한 그는